한 시간 반 후면 죽어야 할 애인인 동시에 남편인 이 김 상위의 운명을 모르는 그녀는 지금 이 시간에 천주님께 열심히 기구하며 묵주신공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애인도 나를 위해 기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천주님의 전능하심과 사랑과 자비하심을 믿고 있을 것이며 그래서 천주님의 보호 아래 자기들의 애인들은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김 상위는 천주님을 거부하는 고집 속에 죽어야 한다. 그것도 바로 내 손에 의해 죽어야만 한다. 아무리 전시하의 상황이라 해도 김 상위와 같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대죄(大罪)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대죄를 피할 수 없는 군인의 몸으로 김 상위를 만난 것이 후회스러웠고 총살권을 받게 된 내 입장이 원망스러웠다.
「방카」입구에 적의 포탄이 또 떨어졌다. 흙가루 먼지 바람이 우리를 뒤덮었으나 무사했다. 넓어진「방카」입구를 통해 굴러들어온 바람에 뒷받침 받은 촛불은 불길을 전후좌우로 길고 둥글게 내뿜으며 더한층 거세게 타고 있었다. 촛불이 빨리 타지 않기를 바랬다. 김 상위의 습기 가신 두 눈은 무섭도록 빛나고 있었고 그의 표정은 엄숙하고 장엄한 나머지 거룩해 보이기도 했다. 자기 신념을 위해 죽음을 받는 한 순교자의 표정과도 같았다. 죽음이란 종교적인 것이며 죽음을 의식하고 왜 자기가 죽는지를 알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태도는 기실 거룩한 것이다. 촛불은 쉴 새 없이 타고 있었다. 내 마음에 조바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죽기 전에 김 상위에게 죽음의 뜻과 영원의 존재성을 납득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또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을 위해 살아 왔고 앞으로도 사랑을 위해 일생 살아가겠다는 김동지! 동지가 인간으로서 삶을 받은 날이 성 금요일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부활절 밤 성당 문턱에서 구제 받았다고 했지요? 전 인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거룩한 날에 삶을 받은 동지에게 예수님의 각별한 은혜가 꼭 있을 것이요. 그리고 이 우연은 동지에게 새로운 영원한 생명을 줄지도 모르오』『예수의 각별한 은혜와 새로운 영원한 생명이라구요?』
『그렇소. 인간 본연의 삶인 영생이라는 각별한 은혜와 삶을 동지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요』
『하하하, 동무 웃기지 마오. 동무의 교회가 가르치는 교회를 따르면 나는 용서 받을 수 없는 대죄인이요. 당신네 교회가 악마시하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자가 된 나에게 예수의 은혜란 또 무슨 소리며 영생이란 말은 무엇을 뜻하고 있소? 설사 예수가 그런 것을 나에게 준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거절할 것이며 내 공산주의 동무들이 있는 곳을 선택하고 따라가겠소』
『사랑이신 천주님의 자비하심은 김동지의 고집을 초월해 은혜를 베풀 것이요. 인간의 비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천주님께 대한 신앙을 버렸다는 동지의 태도는 어리석고 그릇된 것이나 동지가 조국과 민족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한 동지의 사랑은 사랑으로써 영원한 것이며 이 사랑과 함께 동지는 구제 받은 상태에서 영원히 살 것이요. 이 다음 세상 말에 천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다음과 같은 선언을 동지는 들을 것이요』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위해 마련한 천국에 들어와 나와 함께 기뻐하고 행복하시요. 왜냐하면 내가 배 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마를 때 마실 물을 주었으며 내가 헐벗을 때 옷을 주었고 슬플 때 위로해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치료해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방문해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잠자리를 준 여러분은 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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