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한 순간의 잘못으로 21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의 품에 귀의, 하느님의 아들답게 장한 최후를 마쳐 신앙의 위대함을 행동으로 보여 준 사형수 고 서스테파노 씨의 유해가 16일 월배본당 신자들에 의해 달성군 옥포 대구교도소 공동묘지에서 대구시 범물동 천주교회 묘지로 옮겨져 영주의 터전을 잡았다.
『신부님! 오늘 서스테파노가 갑니다』
지난 2월 28일 목요일 여늬때와 같이 수인(囚人)들의 정기 방문을 위해 대구교도소에 들어선 정광영 신부와 배발라바 수녀에게 교도소 측에서 들려준 이 말은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이었다.
서 스테파노-. 그는 72년 4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뉴서울여관 신혼부부 살해범으로 73년 6월 형이 확정되어 그해 7월 정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고 조용히 속죄의 길을 걸어온 사형수였다.
『그토록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하느님의 아들이 된 스테파노가!』
정 신부와 배 수녀는 뒤통수에 심한 충격이라도 받은 듯 몸과 마음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그의 마지막 기도를 위해 수녀님께서도 입회해 주시길』하던 교도관의 엄숙한 표정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무거운 걸음은 어느덧 집행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3시 정각 교도관들과 함께 서 씨가 집행장에 들어왔다 정 신부와 배 수녀를 보는 순간 그는 엷은 미소를 띠며 목례를 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하느님의 황홀한 대전 앞에 나아가는 영광을 실감이라도 하는 듯 빛났고 두려움의 기색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침착한 그의 태도에 입회자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모든 형 집행 절차가 끝난 후 그는 노모가 마지막으로 지어 보낸 흰옷을 갈아입고 형틀에 앉아 성가를 불렀다.
많은 죽음을 보아온 정 신부와 배 수녀도 목이 메어 성가를 계속할 수 없었으나 그는「주여 임하소서」를 2절까지 침착하게 불렀다.
그 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고 숨소리를 죽여가며 이 위대한 신앙인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성가가 끝난 후『신부님, 수녀님! 천국에서 만납시다』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미소를 지으며 그는 조용히 집행을 받았다.
그의 두 눈은 유언에 따라 영주읍 최모 군(8세)에게 이식돼 최군에게 광명을 찾게 해 주었다.
그동안 부활 등 본당 사정으로 미뤄오다 16일에 서 씨의 유해를 이장키로 결정하자 월배본당 신자들은 스스로 모든 노력 봉사를 아끼지 않았고 교도소 측에서도 버스 1대를 내어 주는 등 지원을 했다.
이날 서 씨의 유해는 11시 월배성당에서 간단한 출관 예절을 마친 후 곧 범물동 묘지로 운구, 평소 그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쳐 온 배 수녀와 김동한 신부 및 50여명의 월배본당 신자들과 삼덕동본당 레지오 단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 신부 주례로 모든 예절을 마치고 1시40분 하관됐다.
『제가 죽으면 이 죄 많은 몸을 태워 강물에 뿌려 주십시요』란 말을 남길 정도로 끝까지 겸손했고 잘못을 깨닫고 간 그의 묘소 앞에는 정 신부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아담한 비석이 세워졌다. 거기엔『소금은 좋은 물건입니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소금을 다시 짜게 할 수 있겠습니까. 땅에도 거름으로도 쓸 수 없어 버릴 수밖게 없습니다(루까 14ㆍ34-35)』란 성귀(聖句)가 새겨졌다.
마치 남은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신앙인의 참 자세를 깨우쳐 주기라도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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