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현실주의
이 시대는 실존주의의 철학 사상이 물질사상 과학만능 관능주의 등 현대 세계의 특징에 영합되는 또 하나의 사상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인들은 고상한 이상이나 영원한 가치의 추구보다는 당면한 현실을 실존적으로 사는데 제일의적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말해서 현실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상 역시 현실에 살면서 영원에 희망을 갖는 가치관의 복음정신과는 상치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현실주의는 오늘 당장을 이 세상 사는 동안 물신양면으로 안락하게 잘 살자는 주의 주장이다. 죽은 후의 미지으 저 세상은 모르는 대로 두어라는 식의 오불관언의 태도이다. 따라서 부활영생의 신앙관에 대해서는 전연 귀와 눈을 가리우고 만다. 이런 심리상태에 침투되어 있는 현대사회를 복음화의 터전으로 가능케 하는 방도는 무엇이겠는가?
영원에 대한 희망과 이상이 없는 사람들을 소망의 피안으로 회두시키기는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오직 교회는 겸손되이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허약성과 무상을 실증하여 주고 인간의 심층 속에 내재하고 있는 영원을 향하는 심기를 계발하는 데 끈기 있는 노력을 경주하여야겠다. 교회는 현실과 영원 사이를 이어 주는 교량적 역할을 다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는 이상 현실주의를 배격하기보다는 그것을 受容하면서 영원에의 구원으로 승화시키는 여유 있는 방법을 시도해야겠다.
(三) 한국 복음화와 특수적 장애
현대 사회의 복음화에 대한 일반적 장애와 그 극복책에 관해서 보았으나 다음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풍토에 따르는 몇 가지 애로와 그 대처에 관해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①유교 사상과의 관계
한국 사회의 의식 구조는 유교ㆍ불교 및 도교(선교)의 3대근원에 뿌리 박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도교사상은 점차로 약세화되고 유교사상과 불교 신앙만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풍토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유교를 대상으로 개략적으로 고찰해 보겠다.
유교는 중국에서 기원해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수했던 동양 고유의 철학이요 사상이고 우주관이고 인생관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경유지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교가 가장 존중되었고 개화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조 5백년의 배불숭유정책의 결과로서 유교는 한국의 정치경륜이요 사회 윤리 기준이요 문화의 척도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일을 독무대로 지배해 온 한국의 유교사상은 한국인 의식 구조의 근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유교사상의 핵심을 몇마디말로서 표현하기는 극히 외람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흔히 불교의 자비 그리스도교의 사랑에 대비해서 유교의 핵심 사상은「仁」이라고 한다. 이「仁」을 중심으로 하여 삼강오륜의 강령이 펼쳐진다.
즉 君臣ㆍ父子ㆍ夫婦의 삼대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다시 인간관계를 대 국가(君臣有義) 대 가정(父子有親ㆍ夫婦有別) 대 사회 (長幼有序ㆍ붕友有信) 의 다섯 가지 윤리 덕목으로 설정하였다.
또 한편 유교의 우주관은 천지만물의 근원인 조물주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흠숭하는 경천의 사상이 철저하다. 또 유교의 윤리 강령 중에도 가장 정점을 이루는 충효의 사상은 절조를 수호하는 실덕과 조상을 존중하는 양속을 유래케 하였다. 이러한 삼강오륜의 덕목과 경천숭조의 풍토는 그리스도교회의 십계명과 거의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런 고유의 문화와 사상을 가진 이조 후기에 전래한 천주교회는 과연 어떤 자세로 임하였던가? 회고해 보면 외국 선교사는 한국의 전통적 사상은 거의 도외시하고 서구적 교리를 무조건 주입식으로 강요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는 제일 먼저 경천종조에서 나오는 조상 제사의 문제와 크게 형돌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곧 이른바 서학 배척의 구실이 되어 대소 여러 차례의 교회 박해를 야기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후에 동양의 제사를 하나의 고유한 미풍량속으로 판단하여 그리스도 교리와의 배려됨이 없음이 인정되었다. 만약에 전교 초기에 이와 같은 신중한 사려 분별이 있었더라면 한국 복음화의 역사는 전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었을 것이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아직도 조상 제사는 금기 사항으로 되어 있음을 볼 때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문제는 요연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오늘날「아시아」전교에 있어서 유교사상의 재검토가 강조되고 있음은 비록 만시지탄이 지만 앞으로 아주 복음화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요는 유교의 체질에 적응한 처방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화시켜야 하는 문제이다. 뿌리 깊은 유교의 감각으로서 그리스도교는 아직 이방인의 종교의 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좀 과대하게 표현한다면 교회 신자마저도 유교의 갓(冠)을 쓰고 그리스도교서 양복을 입은 기이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도 없지 않을 정도이다. 하루 빨리 유교의 피부에 알맞는 그리스도 복음의 살(肉)이 합체되는 한국의 복음화가 소망스럽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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