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장호원」으로 불리우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의 유서 깊은 감곡본당에 11일 경사가 났다. 신자들에겐「감곡본당 할머니」로 이곳 주민들에겐「장호원 할머니」로 통하는 김 데오라(사영) 할머니가 80회 생신을 맞은 것이다.
열두 살 철들면서 입교하여 80 평생을 오로지 전교로 살아와 대녀(代女)만 해도 7백여 명을 헤아리는 할머니인지라 그의 생신을 축하하러 5백여 대녀와 신자들이 경향 각지에서 모여들었으니 본당은 온통 축제 기분일 수밖에.
「대모님」하고 부르며 손을 잡는 고희「古稀」를 넘긴 할머니로부터 20대 처녀에 이르는 대녀들은 이날 잔치를 열어 대모의 은공과 만수무강을 축원했고 본당은 이날을「데오다의 날」로 정하고 평생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 데오다 할머니의 생애는 바로 감곡본당의 역사이기도 하다.
청주에서 부친 김호길과 어머니 광산 김씨 사이에 태어난 데오다 할머니가 장호원으로 온 것은 열두 살 때인 1907년.
「생골」이라는 동네에 정착하여 그곳 공소 회장의 지도로 당시 본당 신부인 임까밀로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았다.
감곡본당을 창설한 임까밀로 신부 밑에서 신앙을 굳힌 그녀는 동정을 결심, 결혼을 권하는 부모를 설득시키며 20 전에 전교 일선에 나서 일대 마을 치고 발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이때부터 많은 대녀를 가진「성당 아주머니」로 불리워 어떤 때는 한 번 영세에 2~3백 명씩 입교시켰고 한 번에 60명의 대모를 서기도 했다는 것.
이렇게 거두어들인 영세자가 수천을 헤아리고 대녀만도 7백명에 이르고 보니 자연히 신자들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모르는 이가 없어 할머니의 한마디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어 이때문에 일경(日警)의 1급 요시찰인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강직하기로 이름난 할머니에게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는 얘기가 통할 리 없었으니 일경이 본당에 가한 압력은 사실은 할머니에게 대한 압력이었다.
대녀를 만날 때마다『남편과 아이들 성당에 잘 다니느냐』고 묻는 것을 인사로 삼고 혹 어느 남편이 성당에 못 나가게 한다는 말을 들으면 만사를 제치고 뛰어가 타이르던 할머니에게도 남모를 고뇌가 많았는데 그것은 부모의 강압에 못 이긴 결혼과 큰 기대를 걸었던 이질의 신학교 중퇴였다.
데오다 할머니는 평생을 두고 강압에 꺾인 동정을 마음 아파했고 온갖 정성에도 신학교를 뛰쳐나온 조카의 일을 섭섭해했다. 그녀가 남긴 단 하나의 혈육은 미국에 가 있고 지금 할머니는 본당 현야고보 신부의 도움으로 평생을 보낸 이곳에서 같이 늙어가는 대녀들과 말벗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날 대녀들이 마련한 한목을 곱게 차려입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데오다 할머니는 신자들이 바치는 선물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녀가 7백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그들이 훗날 모두 천당에 간다면 조그만 공이 되겠지만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낙오된다면 이 늙은 몸은 천주대전에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