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숙환 끝에 71세를 일기로 별세한 성루가병원장 故 박병래(요셉) 박사는 의사로서 골동품 수집가로서 사회와 교회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가톨릭의 대표적 평신도였다. 경성의전을 나와 의사가 된 故 박 박사는 잠시 총독부 부속병원을 거쳐 33세의 나이로 가톨릭의 첫 의료기관인 서울 성모병원 초대원장으로 박탁될 만큼 교회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故 박 박사의 이러한 교회와의 인연은 그의 부친 박준호(요셉) 씨의 교회 교육사업에 남긴 공헌과 함께 교회의 육영ㆍ의료 양대 사업에 있어 2대에 걸친 공헌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부친 故 박준호 씨는 1924년부터 36년까지 가톨릭의 대표적 학교인 동성과 계성의 교장을 역임하면서 탁월한 교육 행정가로서 역량을 발휘하여 두 학교의 오늘의 기초를 쌓았고 한편 일제의 어려운 때 앞장서 교회를 보호한 패기에 찬 일꾼이었다.
故 박 박사는 그의 부친이 암으로 53세로 별세하던 해인 1936년 성모병원장에 취임, 그로부터 20년간 성모병원을 키웠으며 1956년엔 가톨릭 의대 3대 학장으로 설립 후 어려운 학교를 일으키는 데 헌신했다.
특히 그는 치밀한 병원 운영으로 6ㆍ25 동란 후 어려운 서울대교구 살림을 크게 도왔고 많은 성직자들은 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건강을 회복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평소 과묵한 그는 오랜 기간 교회에서 일해 오면서 때로는 성직자로부터 섭섭함을 겪은 일도 많았지만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성직자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신앙은『성실과 사랑에 찬 고매한 인품으로 육체의 병과 함께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인슬의 실천자』(김 추기경 추도자)로서 일생을 살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를 존경하여 프란치스꼬 재속형제회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그 후 성루가병원을 개설, 서울 장안의 명의로 병석에 눕기 전까지 환자를 돌보았고 지난 4월엔 50여년간 사재를 털어 수집한 국보급 도자기 3백62점(싯가 10억 원 평가)을『문화재는 비록 개인이 소유하더라도 개인의 재산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공유물』이라면서 조건 없이 국립박물관에 기증, 청빈의 정신을 스스로 실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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