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불교 신앙과의 관계
앞에서 말한 유교는 엄격히 말해서 종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교는 세계 사대 종교 중의 하나로서 동양에서 그 세력을 떨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서역(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도입된 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개화전성을 이루었다.
불교는 유교가 현세적 실천론리에 치중한 것과는 달리 내세적 사생관을 가진 특유한 종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불교는 하나의 종교만에 그치지 않고 고대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예술 등의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불교가 이조에 들어서면서 주로 정치적 이유로서 감행한 배불숭유정책에 희생되어 5백 년 이래 쇠퇴일로를 걸어 왔다. 여기서 불교에 대한 교리를 언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또 감히 론급할 엄두도 낼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불교가 한국인의 인생관 내세관 등의 종교적 심성 내지 심층사상에 뿌리 박고 있는 사실만을 정시해야겠다.
어떻게 보면 유교가 한국인의 륜리적 실천 생활 방식을 규제했다는 점에 대비해서 불교는 한국인의 철학적 인생관을 부여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이 한국의 철학과 생활이 유교와 불교의 혼합물로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그리스도 복음화하는 유교에 못지 않게 불교와의 상관 관계도 깊다.
그러나 한국의 그리스도교 준입은 불교와의 교섭에서도 이보다는 배치의 관계로 나타났다. 먼저 그리스도교는 같은 외래종교이지만 이미 십수 세기를 앞서 들어와서 완전히 한국에 토착화된 선배종교에 대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양 불교를 하나의 철학사상관 비종교화 우상 숭배 내지는 미신시하는 고자세를 취해 온 것이 사실이 아닌가? 여기서 교회는 절대다수의 한국 불교도들의 저항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교회와 불교를 개략적으로 비교해 볼 때 윤리면에서나 내세적 구원관에서 상사한 점이 적지 않다.
만약에 교회가 불교에 대한 좀 더 깊은 비교 연구가 가해졌더라면 대중 불교도들에게 복음화의 문이 훨씬 더 개방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교회와 유교와의 대화보다도 불교와의 대화는 극히 제한된 상태이고 또 현실적으로 혼인 가정문제에 있어서 교회 신자와 불교 신자 사이에 심각한 긴장관계가 있음을 많이 볼 수 있고 따라서 유교도나 무종교자에서의 귀의률에 비해서 불교도의 그리스도교 개종은 지난지사에 속한다.
더욱이 오늘의 한국 불교는 도래 이후 토착화의 과정에서 한국 고유의 민속신앙과의 융합이 폭 넓게 이루어진 나머지 불교 본질의 신앙 원리에서 멀리 벗어나 일종의 기복불교로 설명하면서 상당 정도의 미신화 현상을 빚어낸 것도 사실이다.
불교가 그와 같은 변질의 형태를 취하면 그럴수록 이들을 복음화로 이끌기는 더욱 더 큰 장애가 되는 것은 필연지사이다. 앞으로는 교회 안에서 불교에 대한 비교 연구를 깊이하여 대화의 폭을 넓히고 리해의 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한국 복음화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③민속신앙과의 관계
어느 나라나 민족에도 그 고유의 민속신앙이 있다.
한국에도 례외 없이 한민족의 원시적 종교신앙이 있었다. 그것도 원시종교에 공통되는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즉 모든 동물과 식물과 자연에는 제각기 정령이나 령혼 혹은 령이 있다고 믿는 정령신앙 즉 아니미즘(ANIMISM)을 가졌다. 따라서 그 정령의 힘을 얻기 위한 주술(MAGIC)이나 그 정령의 화를 면키위한 어떤 금기(TABOO) 등이 있다. 또 이 정령(혹은 신)의 능력을 받았다고 칭하는 무당을 인정한다. 이것을 일종의「샤이먼」(SHAMAN)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정령을 믿고 무당을 통하여 복을 받고 재앙을 면하려고 주력을 빌고 금기를 지키는 등의 원시적 신앙을 무속종교(샤아마니즘)라고 오늘의 민속종교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단군신화 산신 성황신 칠성제복서 사주 등등의 길흉화복을 의지하는 잡다한 민간신앙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근대 서구 문명을 도래한 그리스도교는 이것들을 무조건 미신이라는 이름 아래서 가차없는 배격을 가하여 왔다. 추호도 타협이 없었다.
그러나 민족 유사 이래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이 원시적 민속신앙은 외래교人 유교나 불교와는 어느 정도 융합 또는 병존의 현상을 오랜동안 유지해 온 것이다. 불과 2백 년 전이 채 못 되는 시기부터 들어온 서양 종교의 무자비한 규탄을 받은 이 민속신앙은 청천벽력을 맞은 격으로 당황하며 또 무저항의 저항을 계속하여 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의 그리스도교는 본래의 고질적 폐습을 개혁하여 근대 문명화 하는 데의 공헌은 있었지만 그 고유의 민속신앙을 고압적으로 묵살하고 일고의 배려도 경주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는 한국 복음화의 원대한 안목으로 볼 때 성급한 방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오늘에 와서「로마」의 가톨릭교회나 WCC의 세계기독교협회에서나 다 같이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강조하고 있음은 어느 의미에서 과거의 세계 종교 정책의 서구일변도와 지역 민족의 토착화 사상을 경시하여 온 데 대한 뒤늦은 반성의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도대체 한 나라와 민족의 전통문화는 그것이 좋건 나쁘건 간에 좀처럼 쉽사리 바꾸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개신 발전함에 있어서는 일시적으로 혁파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순화하여 가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책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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