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한 바와 같이 유교와 불교가 서로 얽히고 설키어 한국 민족의 문화사를 이룩하여 온 민속신앙의 역할(비록 나쁜 점이 있더라도)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오직 서구적 사고방식만으로 복음 적용을 시도한 것은 퍽 어리석은 방법이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화의 진로는 많은 저항과 마찰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오늘에 있어서도 복음화에 대한 가장 큰 장애 사항으로 남아 있다.
그뿐도 아니다. 우리 교회 신자 안에서도 아직도 겉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입으로는 주의 기도를 열심히 외우면서도 속에는 종래의 미신적 기복신심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솔직히 시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금이라도 한국의 민속종교에 대해서 민속학자들에게만 맡겨 두지 말고 크리스찬 신학의 입장에서나 선교 방책의 실지 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분석 연구하여 원시적인 토착종교에서 올바른 계시종교의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거창한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4)신흥종교의 문제
이 민속신앙에 관련하여 또 하나의 종교문제가 있다. 그것은 소위 신흥종교 또는 유사종교의 문제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각 파 종교의 수효는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또 그들의 교지들도 착잡무계하여 논평할 겨를이 없다. 다만 일언이폐지해서 유교ㆍ불교 및 기독교의 기성 종교에서 분리하거나 또는 거기에 근거를 두면서 민속신앙과의 각양각색적 혼합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사이비종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순무속계의 것과 유교계 불교계 기독교계 및 그들의 혼합적 계열의 유사종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자에 와서는 일본계의 유사종교도 침입되어서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소위 신흥종교의 만연은 한국 복음화에 대한 또 하나의 적지 않은 장애 사항인 것이다. 심지어는 그리스도교계의 기성 신자들 가운데서도 그 따위의 유사종교에 유혹 당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도 우리 교회는 각종의 사이비 종교에 대해 소홀이 하지 말고 깊은 관심과 고찰을 경주하여 복음적 계통의 길을 넓여야 하겠다.
四, 복음화의 방법론
이상에서 먼저 복음화에 대한 저해 요소가 되는 일반적 문제와 한국에 독특한 특수문제에 대해서 약간의 고찰을 해 보았다. 이제는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복음화를 하느냐의 적극적 방법론에 관해서 다시 관찰해 보려고 한다. 이것은 원칙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①원칙적 문제로서 첫째는 교회가 세상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는 손자의 병법과 같이 우리는 세상을 복음화하겠다는 이상 그 대상되는 세상의 되어가는 현상을 실상대로 편견 없이 바로 인식해야 된다.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은 현세의 물질주의 과학만능 등의 시대적 풍조를 다만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이를 관용적이고 원시적 아량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런 재료를 복음화의 도구로 변화시키는 성사적 역할을 교회는 인내와 용기로서 해야 하겠다.
다음은 반대로 이 세상이 교회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 문제이다. 이제까지는 교회가 항상 사회를 비판하는 눈으로 보아 왔지만 지금은 사회가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의 눈에는 교회는 무력하거나 무용한 존재처럼 보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회는 사회의 거리낌 없는 비판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아량이 있어야 하고 또 이에 대해 변명하거나 책임전가에 급급하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내 탓」으로 돌려야 하겠다.
교회 끝으로는 위의 두 가지 사실을 토대로 하여 교회 자신을 철저히 알아야 하는 문제이다. 오늘날까지의 교회는 과연 유아독존적인 자세는 아니었던가? 말은 많은나 생함이 따르지 못하는 자가 모순은 없었던가? 교회는 정말 세상의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등등의 일을 깊이 반성 찰고해야겠다.
②복음화를 이룩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실천 행동의 문제이다. 신망애의 행동 구현이다. 여기는 복음화의 객체가 되는 인간과 복음화의 주체가 되는 인간과의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바꾸어 말해서 교회의 신자 즉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자를 막론하고 아직 신자 아닌 인사에 대한 접촉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만한 말과 행동이 드러나야만 한다.
예수의 제자되는 증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현하의 설교가 있어도 하나의 꽹과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교회의 모법적 실천문제는 너무나 광범한 문제이기에 요설을 피하고 다만「만사에 사랑」이란 한마디로서 끝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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