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첫 성년의 반포가 있은 후 1975년 성년은 27차의 성년이지만 한국 교회가 성년 경축에 참가하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성년이다. 19세기의 네 차례 성년은 군난시대였으니 그렇고 20세기에 들어 지나간 5차의 성년들 중 세 번의 성년은 일본 식민지 시대요 한국 성교회로서 적극적 경축 행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1950년 성년과 1954년의 특별 성년 두 차례였다.
1949년 5월 26일자 삐오 12세 교황의 교서로써 반포된 1950년 성년은 1949년 12월 24일 저녁부터 1950년 12월 31일까지「로마」에서 먼저시행하고 세계 각국 교회에서의 시행은 이듬해인 1951년에 실시되었다. 축제의 준비는 특히 다음의 4개 항에 유의해야 한다는 훈령과 함께 교황께서 지으신 성년 기도문이 발표되었는데 ①기도와 통회의 업을 행하며, 그리스도와 그 영원한 교회로 만민을 교화하도록 하고 ②전 세계의 평화와 성지(聖地) 안정운동에 협력할 것 ③교회의 적들의 격심한 공격을 방어하고 무신론자 무신앙자들의 귀화를 위해 기도할 것 ④도움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필요에 응하여 모든 방법으로 원조할 것. 그리고 참배할 순례 성당으로는 성베드로 대성전 성바오로 대성전 성요한 하떼란 대성전 성마리아 대성전(聖母雪地殿) 등「로마」의 4대 성전이 지정되었다.
한편 1950년 성년은 한국의 기해(己亥=1839) 병오(丙午=1846)년 순교 복자 79위의 시복 25주년이 되는 해였으므로 이 해의 2월 21~23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해방 후 첫 주교회의) 당시의 남한 6교구(서울ㆍ대구ㆍ전주ㆍ광주ㆍ춘천ㆍ대전)교구장 회의는 로마에서 거행되는 성년 축하식 전에 노기남 서울 주교와 대전교구의 원 주교께서 한국 교회 대표로 참석한다는 것과 순교자 현양사업으로 새남터 순교지에 순교 기념탑을 건립하기로 결의하고 그 비용 7백60만 원을 신자 매인당 50원 평균으로 각 교구에서 갹출하며 이 외에 ①우리말 미사경본 발행 ②예수회 초청 ③국영방송에 가톨릭 시간 배정과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반가톨릭적 요소의 제거 요청 ④평신자 교육을 위한 하계 가톨릭강좌 개최 ⑤가톨릭 청년잡지를「천주교 총연맹」의 기관지로 인수 발행 ⑥매년 육순주일(六旬主日)을 가톨릭 출판주일로 정한다는 등 중요 사항을 의결 발표하였다.
5월 초순 두 분의 주교님은 유럽으로 떠나시고「로마」의 성년 행사에 대한 외국 통신이 우리나라 신문에도 자주 보도되고 1946년부터 성대하게 거행되어 온 성체거동이 이 해 6월에는 더 화려하게 혜화동 대신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어 성체 행렬이 혜화동 로타리를 일주하는 등 종교 행사로 성년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랴. 저 6ㆍ25의 참혹한 비극!
성년에 우리 온 겨레와 온 한국 교회가 치뤄야 할 보속과 시련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엇다. 순교자를 특별히 기년하고 순교 정신을 앙양하려던 이 해에 한국 성교회는 남과 북에서 20세기의 새로운 순교자들을 수없이 배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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