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나 성 아우구스띠노와 같은 대학자들에게만 부여하던「교회박사」의 칭호를 올바른 사상과 신비생활, 그리고 용감한 활동을 전개했던 두 여성에게도 부여했다. 그 칭호를 받은 두 여성은「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이다. 이 두 여성은 시대적으로는 달랐으나 모두가 그 당시의 도덕적ㆍ지적ㆍ정치적으로 타락의 위기에 처한 교회에 덮쳐온 암운(暗雲)을 몸으로써 막았으며 후세에 불멸의 빛을 남긴 여성들이다.
이 두 여성은 그러한 위기를 구하는 길은 각자의 개인적 성덕과 어디까지나 교회의 기본적인 지도 이념에 대한 성실한 숙명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생활은 열심한 신앙 안에서의 생활이라기보다는 활동적이며 영웅적인 투쟁의 생활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부당하게도 교회의 멤버들과 수도원 내부로부터의 음모에 시달리면서 끊임없는 감동적인 영전(靈戰)의 생애였기 때문이다.「아빌라」의 성녀는 소화 데레사와 구별하기 위해 보통 대데레사로 알려지고 있는데 과연 대데레사다운 영웅적 대인(大人)이었다. 대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아빌라」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 당시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로서 까를로 5세의 시대였다. 이 가냘픈 귀족의 딸이 25년 후엔 그렇게도 눈부신 대활동을 전개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12세에 모친과 사별하고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항상 신앙과 덕성(德性) 안에 사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 대사업을 이룩할 수 있는 소양의 일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랫동안 주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허나 그것은 다음날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히 주님의 사랑 안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숭고한 영적 비약의 토대를 쌓게 하려는 배려였다. 마침내 20세가 되어서야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데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감상적인 소녀의 허무감에 대한 도피적 행위인 것처럼 여겨졌다. 왜냐하면 불안과 실망이 엇갈리는 사회생활에 대한 환멸 때문에 수도원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소명의 방법은 가지가지이므로 그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녀는 열심히 자기가 택한 생활을 걸어갔다. 그녀 스스로가 말하고 있듯이 이 결단은 자신이 상상하고 있던 것보다도 정확하게 자신을 진정한 사명과 운명에로 인도해 주었다.
수도원에 들어가 있었을지라도 항상 세속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채 갈등을 느끼면서도「항상 끈기 있게 자신의 길을 추구하는 자」로서의 태도를 잊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수도생활은 꾸준히 진보해 갔다. 특히 그녀의 마음을 진보시킨 것은 아주 취급하기 어려운 환자의 간호를 담당하게 된 후부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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