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란 무슨 뜻이며 어떻게 하여야 되는지 여러 고명하신 신부님과 신도들의 발표를 통해서 명백하여졌고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지금쯤은 이에 대해서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이 약화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한 번도 수도자 자신들의 복음화에 대해서는 언급한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신비체의 구성원인 수도자의 복음화 역시 그 종점은 동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수도 성소가 감퇴되어 간다든가 기성 수녀들의 양성문제가 시급하다든가 노쇠해 가는 수녀들의 대책문제가 걱정이라든가 외국 선교사들의 수가 감소된다든가 또는 어떻게 하면 복음화에 적응할 것인가 등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각 수도원마다 그 양상은 다르지만 흔히 수도자들끼리의 모임을 통해서 논의되고 있다.
교회의 근본적 사명인 복음 선포에 어떠한 실패가 있었다면 그것은 단순히 수도자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20세기에 처해 있는 교회의 문제는 우리 수도자의 복음화 생활을 다시 한 번 적라라하게 고찰하고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참으로 의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一, 복음화에의 실패는 어디에 기인되는가?
복음화에 있어서 수도자만이 책임을 질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이처럼 비종교적인 사고방식 유행 시대 조류 등등을 분석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은 아니다.
수도자인 내 자신의 양심을 살펴볼 때 나 역시 같은 물의 한 고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앞으로 성직자 수도자들의 聖召는 감소되리라고들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염려하기 전에 좀 더 생각을 좁혀 본다면 과연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꼭 있을 자리에서 꼭 필요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가? 혹시 별로 필요치 않은 비합리적인 활동에만 종사하고 첫째로 해야 할 일이 둘째 혹은 세째로 밀려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수도자의 복음화에 장애물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 세 가지 점에서 나의 견해를 전개하고자 한다.
①심리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
성인 교육이나 발전하는 현실에 당면하는 것을 두렵게만 생각하고 쉬운 일만을 가려서 하려고 하지 않는가?
즉 순수히 말을 잘 듣고 결과가 쉽게 보이는 어린이들의 교육에는 치중하지만 그 어린이들이 우리를 떠났을 때 얼마만큼의 수확이 있느냐 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쉐넨스 추기경은 수도 성소가 줄어드는 이유의 하나는 바로 성인 교육이 철저하지 못한 데 있다고 하였으며 종사하고있는 수도자들도 성인들을 다룰 때 마치 어린이를 다루듯이 하고 있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
국한된 수도생활이지만 자유롭게 성인들과의 만남을 제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외부의 신도들이 신중하고 존경스럽게 수도자들을 대신하고 수도자와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데 비하여 어느 편이 더 자연스럽지 못한 태도로 나오고 있는가 하는 점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 외부 사람들이 평하기를 수도자들의 친절과 경건함은 인정하지만 인격 대 인격으로 마음의 문을 걸고 벽을 무너뜨리고 이해하기는 너무도 먼 길에 있으며 사귐에 있어서 너무도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만민을 사랑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과 신축성」이 우리 수도자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성숙한 자로서의 태도와 마음의 자세는 강직하게 지녀야 함은 재삼 언급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②지도자로서의 신학적인 교리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
수도자의 복음화에 있어서 장해물은 영신적 지도자로서의 수도자들의 교리 지식이 깊지 못하다는것이다. 이것은 어떤 개인, 혹은 어떤 1개 수도원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우리 수도자의 양성 과정을 재체제화 할 필요성을 느낀다. 왜냐하면 받은 대로의 교육이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선 죄를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준법정신 위주의 교육은 이미 지양되어 가고 있지만 법을 위한 인간을 양성하지 말자는 것이다.
크리스찬 생활이란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범하는 약점이나 잘못을 관용으로 포용해야 하며 바로 이 인간적인 약점과 잘못은 은총의 샘이신 주님의 자비를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크리스찬 생활이 죄만을 피하는 것으로 족하다면 거기에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어린애 같은 양심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마비가 되고 필연코 알아야 할 기쁜 소식, 복음의 정신은 성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핵심이 되어야 할 중추적인 그리스도의 정신을 알지 못하고 수박 겉 핥기로 외적 일에만 고착하는 우리의 고루함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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