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포로 총살권을 부여 받은 내가 그를 총살시키는 척하고 살려 놓고 철수하는 것이었다. 포로들을 가장 총살한 후 후퇴하면 아무도 이 비밀을 모를 것이며 따라서 나에게 어떠한 책임도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다만 나에게 다소의 용기만 있으면 이 일은 성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기뻤다. 하나의 인간을 구제한다는 장엄한 생각에 나는 흥분돼 있었다.
그 후「방카」안으로 되돌아왔을 때 박ㆍ노 두 포로는 나에게 저주하는 욕설을 퍼부었고, 김 상위는 충혈된 두 눈을 번쩍이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동무, 죽음을 의식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소. 어차피 총살 당할 우리의 운명, 차라리 우리를 빨리 죽여 주오』
『김 상위 동지 실망 마오. 사람의 생명이 그처럼 가벼운 것인 줄 아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도 있듯이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걸어 봅시다』
나는 그때 내 계획을 알려 줄까 했으나 끝까지 참기로 했다.
『동무는 참으로 잔인하오. 운명은 나를 거스려 있는데 그런 비정한 농을 하시오』
『천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는 동지의 운명을 변경시키실지도 모르오. 그리고 그분은 동지에게 일생 잊지 못할 은혜를 내려 주실지도 모르오. 그리고 천주님께서 주신 우리의 생명은 우리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이요. 우리는 천주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소』
『천주의 섭리라는 이름 아래 동무는 끝끝내 한 인간의 고통을 조롱하고 있군요. 그것이 인간에 대한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랑의 행위요?』
그는 성난 음성으로 나에게 벌컥 소리 질렀다.
『그렇소.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존중하는 우리들의 태도요. 그리고 나는 천주님의 자비성을 동지에게 증명시키고 싶소』
『천주의 자비성…그런 것이 어디 있소. 그러지 말고 이 촛불이 다 타 이 환경이 암흑에 쌓여지기 전 우리를 빨리 총살시키시오. 정말 이 시간이 괴롭소』
『시간을 기다립시다. 천주님의 자비하심이 동지를 구제할 것이요. 천주님은 사랑을 옳바르게 실천한 사람이 누구든 간에 그 사랑의 주체인 그 인간을 저버리지 않으시니까』
밤 12시15분 전 우리 중대는 철수 준비를 완료하고 예정된「O」지점을 향해 철수하기 시작했다. 우리 중대가 고지 중턱을 철수할 무렵 포로들을 총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대원 3명을 차출해「방카」부근에 배치시켜 놓고 나는「방카」안으로 들어갔다. 촛불은 거의 다 타 초 심지가 넘어지려 하고 있었다. 김 상위는 앉아 있었고 박ㆍ노 두 포로는 나에게 저주하는 욕설을 계속하고 있었다. 요동하는 촛불에 비친 김 상위의 얼굴은 무섭도록 창백해 보였고 이마에서는 땀이 방울방울 솟아 있었다. 내 얼굴에 못 박은 그의 두 시선은 전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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