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5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동 134~1 성베네딕또회 왜관수도원은 새벽의 침묵을 깨고 은은히 울려 퍼지는 수도원 성당 종소리로 하루가 열린다.
하늘의 천사들도 함께 일어나 같이 기도한다는 수도원성당 종소리、「안젤루스」에 맞춰 각자 숙소에서 일어나 아침기도와 묵상에 들어가는 왜관수도원 수사들 중 김형길(안젤로ㆍ36세)수사는 기상 후 맨 먼저 수도원의 현관과 성당문을 열어놓는다.
성베네딕또회 왜관수도원 객실담당수사、즉 수도원 문지기인 김 수사의 하루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귀찮은(?)내방객임에도 정중히 맞아주는 김수사는 성경에 나오는 「마르따와 마리아」를 예로 들면서 『불평하지 않는 마르따、언니를 조금 도와주는 마리아가 이상적』이라며 주어진 소임에 대한 견해를 피력 한다.
대담 중에도 걸려오는 전화와 찾아오는 손님을 안내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면서 문지기라는 직책이 무척 어려운 직책임을 느끼게 한다.
8년여 동안 여러 명의 파트너를 바꿔가며 수도원 현관을 지켜온 김 수사는 『수도원 현관은 수도원과 세상의 만남이 이뤄지는 중요한곳으로 젊은 사람인 본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곳』이라고 밝힌다.
87년 10월부터는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일하다 돌아온 박준빈(펠릭스ㆍ36세)수사와 함께 수도원문지기로 있다.
대구 북부정류장에서 버스로 20분 남짓 달려가 도착한 왜관 남부정류장에서 도보로 5분정도 거리에 있는 성베네딕또회 왜관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원장 김구인 신부를 먼저 만났다.
성수주일을 맞아 수도자 특히 문지기 수사의 하루생활을 소개하러 왔다는 말에 김 신부는 『수사들이 대부분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취재에 잘 응해줄지 모르겠다』며 김 수사를 소개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수도자、특히 수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취재의도에 동감하는 김 수사는 자신의 일상생활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도자에 대한 이해를 넓고 깊게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비교적 세속과 분리된 수도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베네딕또회는 미사성제와 성무일도 전부를 공동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전례적 예배가 특징이다.
김 수사가 들려주는 베네딕또회 수사들의 생활은 새벽5시에 일어나 아침기도와 묵상에 이어 6시30분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봉헌을 시작으로 7시10분 아침식사 후 각자 맡은 일터로 나가 업무를 보고 오전 11시45분 다시 성당에 모여 낮 기도를 바치고 정오에 점심식사 하는 것으로 오전일과를 마친다.
점심식사 후 공동휴식시간에 바둑ㆍ장기 등 취미생활 또는 대화를 나누고 또다시 각기 일터로 나가는 오후일과는 오후6시에 다시 성당에 모여 저녁기도를 바치고、영적 독서기간을 갖고 오후7시 저녁식사 후 1시간여 동안 공동 휴게시간에 이어 저녁 8시 성당에서 끝기도를 봉헌한 후 각자숙소로 돌아가 독서를 하거나 취침한다.
베네딕또회 수도자들은 김 수사와 같은 문지기를 비롯 경비직ㆍ성당청소ㆍ숙소청소ㆍ주방책임ㆍ교육담당ㆍ분도출판사ㆍ인쇄소ㆍ목공소ㆍ농장ㆍ피정의집 등으로 각기 맡은 일이 다양하다.
기상과 동시에 현관과 성당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는 김 수사의 일과는 아침미사봉헌 후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커피물을 끓이고 숙박 손님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숙박 손님들이 아침식사 할 때 쯤 오전 근무자인 파트너 펠릭스 수사가 조반을 들고 올 때까지 현관을 지키는 김 수사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날이 아니면 자기 방으로 들어와 독서와 묵상으로 오전일과를 보내고 정오부터 끝기도 때까지 현관근무를 맡는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일로부터 전화받기ㆍ상담요청 내방객과의 대담 등으로 대별되는 문지기의 소임자체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관계로 파트너인 박수사와 오전ㆍ오후 구분없이 서로 급한 사정이 있을 때 대신 자리를 지켜주거나 내방자를 맞는다.
어려움을 토로해 오는 내방객들과의 대담 중에 『자신의 부족함을 자주 느낀다』는 김 수사는 힘겹고 어려운 사정을 얘기해 오는 사람들에게는 입장과 처지를 바꾸고 싶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밝힌다.
이런 때일수록 수도원 규칙서에 적힌 「수도원 문지기는 연로한 형제에게 맡겨라」는 귀절이 떠오른다는 김수사는 하루 중 수십 번째 맞는 손님이라도 찾아 온 손님 당사자에게는 수도원、나아가 교회와의 첫 번째 만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방객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소중한 만남이 되도록 노려한다고.
『하루 중에는 점심시간 전 후와 연중으로는 대축일이나 방학 때 내방객이 많다』고 밝히는 김 수사는 찾아오는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 전통이 돼있는 베네딕또회는 개인 피정자들을 위해 「손님의 집」을 마련해 두고 있다고 소개한다.
연중수도원을 찾아오는 이들은 수도자들의 가족을 비롯 동료수도자ㆍ사제ㆍ수녀주교ㆍ순례자ㆍ각 지방 신자ㆍ정부인사ㆍ견학자ㆍ도움호소자ㆍ은인들ㆍ외국손님ㆍ피정참석자ㆍ사업가와 타종교인등 다양하다.
특히 불교스님들이 비교적 많이 찾아오는데 같은 구도자、도반(도를 닦는 친구)으로 수사들과 대담을 나누며 가톨릭의 정돈된 조직과 활동에 깊은 관심을 표명해 온다고 일러준다.
김 수사는 청빈ㆍ정결ㆍ순명 허원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기도와 일、일과 기도로 소박ㆍ단순한 삶을 사는 수사들의 모습은 세속의 눈으로 볼 때 우직스럽고 바보스럽게 보일지라도 「기도로써 결합된 삶」자체가 일반사회에 주는 신선한 상징이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자기 직종에 만족하고 남이 꺼리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존경받아야 될 것』이라는 김 수사는 『수사들이 하찮은 일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에서 참 아름다운 삶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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