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함께 살아오면서 혼자 힘으로 18년전 성전을 건립, 화제를 모았던 대전교구 삽교본당(주임ㆍ윤종학신부)의 김인식씨(시몬ㆍ56세).
나보다 먼저 이웃을, 지역사회를 위해 사랑으로 봉사해온 김인식씨는 비교적 부농이라는 얘기를 들어왔지만 양복을 입고 손에 시계를 찬것은 3년밖에 안된다.
검소하게 살아오면서 말보다 실천을 행해온 그의 삶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불쌍한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있는것이면 무엇이든지 나눠줬던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어려서부터 보아왔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말기 일본에서 기계양성소에 다닐때 대동아 전쟁으로 바로 주위 사람들마저 죽어가는 가운데 자신은 용하게 살아남았고 또「베네딕토」성인전을 일곱번이나 읽었을만큼 감명을 받은것이 그의 실천적인 삶을 더욱 다져준 계기였다.
흙을 파며 땀흘려 지은 과수원 농사가 잘 돼가자 김씨는 우선 이 지역에 성당부터 짓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그당시에는 아직까지 외국원조가 많은때라 그의 성전건립 얘기는 좀처럼 믿어지지않았다.
그리고 삽교에는 신자수가 7세대 밖에 없던터여서『이 지역에 무슨 성당이 요하냐』『성당만 겨우 짓고 망하는게 아니냐』는 등 주위에서 반대가 심했다.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밀고나가는 김씨의 집념은 결국 설계를 세번씩이나 변경해가면서 90평짜리 성전을 67년4월 건립하게 됐다. 김씨는 미신자들에게 벽돌 한장씩이라도 날라달라며 성전신축에 동참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전교해나가기도 했다.
『하느님께서 많이 주셨으니 많이 쓰는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이게 어디 내것입니까』먹는 것이 없고 입을 것이 는 이들을 따뜻이 맞이했던 김씨는 무허가 판자집에서 겨운 살아가는 삽교지역 맹인들을 보고『일시적인 지원보다 이들에게는 따뜻하게 발뻗고 잘수있는 곳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 맹인 45세대의 주택을 3년에 걸쳐 지어주기도 했다.
죽은이들의 시신을 거두는 애령사업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김씨는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임자없는 시신은 거의 도맡아 거두다시피 했고 장례식까지 치러주었다.
또 가족마저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전염병으로 죽은 시신도 기꺼이 염했던 김씨는『일본에서 죽었다면 이런 일은 못할게 아닌가. 하느님께서 지금 당장 데려가신다면 따라가겠다』면서 믿음앞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변갑선신부(現 공주중동본당 주임) 의 지팡이장학회 사업을 보고 자신도 지역사회 불우학생들을위해 장학회설립을 결심한 김씨는 역시 지팡이장학회를 만들어 23명의 학생들에게 고교입학시등록금전액을 지급하고있는데 현재 장학회원은 1백명.
삽교지역에 신용협동조합을 도임한 김씨는『이사회에 진실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 소규모 공장을 운영, 지역민 직업알선에도 힘쓰고 있는 김씨는 앞으로 한가지 더하고 싶은 일은 불우노인들을 위한 양로원 건립이라고.
김씨는 부인 박영임(데레사ㆍ56)여사와의 사이에 7남매를 두고있으며 둘째아들은 예수고난회 수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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