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2월 24일 저녁 때였다. 삐오 12세의 성대한 예식으로 베드로 대성전의「황금의 문」이 열렸다. 1950년 성년이 개막된 것이다. 아직도 제2차 대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이라 인류의 죄를 책하신 하느님의 의노를 풀어드려야 한다는 참회와 속죄의 실감을 느낄 수 있는 때였다.
개인과 집단의 죄를 속죄하는 순례자들의 행렬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로마」의 거리를 메웠다.
전대사를 얻기 위하여 베드로 대성전에서 라떼란 대성전 바오로 대성전을 거쳐 성모 대성전으로 순례의 행진을 계속했다. 오전 중에는 어디를 가든지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거행되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동방예식의 미사 광경이었다.
특히 11월 26일에 교황 주례로 수많은 동서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공동으로 집전한 베드로 대성전의 비잔띤 예식의 미사였다. 장장 두 시간이나 걸린 그 미사 예식은 실로 장엄한 것이었다. 라띤교회에서는 제2차「바티깐」공의회 후에 비로소 공동 집전 미사를 도입하였으나 비잔띤 예식은 그때도 벌써 공동으로 집전되었다.
성당마다 준비되어 있는 고백소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던 고백자들의 모습은 아직 눈에 선하다.
고백소 문 위에는 어느 나라 말로 고백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더욱 인상 깊었던 일은 고백소 앞 휘장 사이로 낚싯대를 연상케 하는 기다란 막대기가 내밀고 있었던 광경이다. 고백을 마친 교우가 고백소에서 나와 그 막대기 밑에 꿇으면 사제는 교우의 머리를 가볍게 때려 주곤 하였다. 속죄의 방법인 것이다.
성년 동안에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시복식과 시성식이 있었던 일도 기억에 생생하다. 특히 6월 25일에 있었던 마리아 고레띠의 시성식은 성년에「로마」에 몰려든 무수한 순례자들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때까지 모든 시복식과 시성식을 베드로 대성전 안에서 집전하였으나 그날만은 참석자가 너무 많아서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서 집전하였다.
광장을 꽉 메운 군중은 광장에서「가스뗄 산안젤로」에 이르는 꼰솔라따 길까지 꼬리를 이어 교통은 완전히 차단되었었다. 마미아 고레띠는 20세기의 성녀 아녜스라고 한다. 알레산드로라는 청년의 공갈 협박에 피를 흘림으로써 순결을 보존한 동정 순교자로 1902년 2월 7일에 숨을 거두었다. 비보를 듣고 달려온 본당 신부님에게 성녀는『나도 알레산드로를 용서합니다. 그분도 사후에 천국에서 내 옆에 올 수 있도록 기도하겠어요』했다는 말이 투옥된 알레산드로에게 전해지자 그 청년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였다. 시성식이 있던 날 그 청년은 백발 노인으로 어떤 수도원 성당에서 진종일 식음을 폐하고 꿇어 있었고 성녀의 어머니는 보행이 불편한 노구를 앉는 수레에 얹어 제단 옆에 와서 딸의 시성식을 지켜보았다. 저녁 5시에 시작된 시성식은 어두울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로 이 순간 한국에서는 북한의 공산 정권이 남침을 감행했음을 이튿날 아침 조간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밖에도 수많은 시복식과 시성식이 있었으나 성년 행사로서 가장 장엄하였던 것은「성모 승천」을 믿을교리로선포한 11월 1일의 성대한 예식이었다. 성모 승천의 신조 선포식도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신조 선언문이 낭독되는 가운데『성모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치신후, 그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부르심을 받아 오르셨다』하는 귀절에 가서 광장을 메웠던 수십만의 군중은 환호 소리와 함께 요란한 박수갈채로 이 신조를 환영하였다. 성모 승천은 초세기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굳이 믿어오던 교리였으나 이를 신조로 선포함으로써 성모께 영광을 드리고 전 인류를 천상 어머니 손에 맡겨드린 것이다.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며 항구한 평화를 성자께 간구해 줍시사 하는 것이 삐오 12세의 뜻이었고 교회 전체의 소망이었던 것이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오늘도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일치하려는 이번 성년의 소망을 성자의 은총으로 이루어 주시리라 굳이 믿는 바이다.
성년은 이같이 하느님과 멀어졌던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다시 하느님을 찾아가며 스스로의 과거를 씻고 새로운 힘으로 인류 구원에 봉사하려는 결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지역교회의 성년이 선포된 지 1년이 되었다. 내년 세계 교회의 성년이「로마」에서 선포되기까지 우리 모두 과거를 씻으며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이웃과 화해함으로써 현대의 인류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하느님 나라 일꾼이 되어야 하겠다.
성년 행사의 본질은 내적 쇄신에 있는 것이다. 외부 행사는 모두 다 이 내적 쇄신을 도와주는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진정한 회두, 진정한 형제애의 회복, 이것이 성년의 은혜요 결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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