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 조국애나 민족애라는 것은 너희들과 정치적 이념을 달리한 동포들을 저주하고 죽이는 데 있지 않다. 너희들과 같은 조국애와 민족애를 가진 놈들은 우리 조국의 통일과 민족 단합을 위해 해로운 존재들이다. 공산주의 순교자처럼 영하지 않으련다. 그 영광을 너희들에게 주는 데 인색하지 않으련다. 자, 그럼…』
바로 그때다. 노 포로가 벌떡 일어나 무엇인가 나에게 던졌다. 그 물체가 방아쇠를 쥐고 있던 내 오른손에 맞자 5~6발의 칼빈 자동소총 알이 순간적으로 발사되었다. 박ㆍ노 두 포로는 신음하며 꿈틀거리고 있었고 김 상위는 내 충성과 함께 일어나 내 총 앞에 가로막고 서서
『안 돼, 안 돼! 동무, 이 동무들은 중상자야. 이 동무들을 쏴서는 안 돼』
하고 외치며 양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하고, 또 결정지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총살하지 않으련다.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쳐온 너의 생애 앞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너의 인간됨에 감탄한 나다. 나는 너를 살려 주기로 결정했다. 아니, 내가 너를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천주님께서 너를 살려주시는 것이다. 천주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분의 자비하심을 너로 하여금 경험케 하기 위해 나는 너를 살려 주련다. 너는 살아 남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 조국의 밝은 내일이 필요로 하는 너다. 너와 나는 사상을 달리한 이념상의 적이라 한들 하나의 조국을 사랑하고 같은 민족을 위해 성실히 일하자.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살아 남자. 너는 북한 땅에서, 나는 남한 땅에서 그리고 네가 말한 선의의 사랑의 경쟁 속에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에게 봉사하자. 그 외에도 특히 나는 너의 애인을 위해서도 너를 살려 주련다. 그녀의 천주님께 대한 신앙과 기구를 헛되게 해 주고 싶지 않다.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길이길이 행복하라. 그러나 나는 너와 내가 다 같이 미워하는 민족상잔을 일삼은 이 저주스러운 전쟁에 너로 하여금 또 다시 참전시키지 않기 위해 너를 부상시키련다. 용서해 다오. 그리고 성 금요일에 출생했다는 너, 너의 성 금요일은 너에게 부활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일생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사랑으로 맞이한 예수님께 부활이라는 영광이 있었듯이 사랑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너에게 부활의 은혜가 있을 것이다. 이 밤이 밝기 전 너 자신의 제2의 생명을 의식하리라. 자, 그럼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가는 이 복된 순간과 고통을 영원히 기억하라』
마치 십자가에 매달려 있듯, 양팔을 벌리고 내 총 앞에 서 있는 그의 왼팔에 칼빈소총 3발을 발사하고, 밖에 있는 대원들에게 총살시켰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방카」천정에 10여발을 계속 난사했다.
김 상위는
『으악』소리를 지르며 땅에 쓰러졌고, 다 타버린 촛불은 초심지가 넘어지자 꺼져 버렸다. 그리고 10여발의 총탄을 맞은「방카」천정에서는 흙가루비가 우수수 쏟아졌다.「방카」안은 별안간 캄캄해졌고, 환하게「턴넬」이 생긴「방카」입구를 향해 나는 뛰어나왔다. 그리고 대원들을 데리고 이미 고지 밑까지 철수한 중대를 찾아 뛰고 있었다….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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