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사본을 위한 서사활동에서 교서의 본판인쇄본 간행으로의 발전적 이행을 보게 된다. 이러한 발전은 철종 치하에 국가적 박해가 완화되어 비교적 평온한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성장하는 19세기 후반기에 진행되었다.
교리서를 대량 공급하기 위하여 본판인쇄의 필요를 통감하게 된 것은 조선교구 소속 성직자들의 공통되는 일이나 특히 베르뇌 장 주교의 노력이컸다. 그는 1858년 11월에 교황청에 보고하기를 『교우가 날로 느니 만일 대를 잃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 후에 옹색한 일이 많을 것입니다. 책을 박으려면 여러 신부가 조선글을 공부하여 성교도리 책을 번역하여야 할 것이오니 그 신부가 어느 겨를에 전교할 수 있으리오』하고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필요에서 마침내 1859년 목판인쇄소가 은밀한 가운데 설치되어 교리서 간행을 보게 되었다. 1859년 11월에 장 주교는 교황청에 ①큰 장마로 전교 여행이 어려울 때를 이용하여 교리책을 나무 판에 새겼음과 ②한국인 성직자 최양업 신부가 전교의 틈을 타 라띤어 원문에서 경문과 교리책을 번역하여 간행하였고 문답책을 수정하였으며 ③다블뤼 안 부주교가 교리책 몇 권을 지었고 순교자 자료를 수집하여 치명자 일기를 꾸미기 위하여 지방을 순행하였으며 ④부르띠 신 신부는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다블뤼 안 부주교가 시작한 한중불자전 편찬에 종사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다불뤼 안 부주교는 1845년 김대건 신부의 안내로 조선에 입국한 후 가장 장기간 조선 왕국에서 잠복 활동하고 있던 바 1851년 상경 후 한중불자전을 편찬하는 한편 동국 역대의 번역에 착수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도 1859년 말에 교리서를 편찬 간행하고 지방에 분포하여 교리를 가르쳐 선을 행하게 하였다고 포교성성 장관에게 서한을 올리고 있다.
안 부주교의 손에 의하여 이룩된 치명자 일기와 동국 역대와 그 밖의 귀중한 조선책 몇 권이 1863년 안 주교 집에 화재가 났을 때 소실되었다고하거니와 그의 틈틈이 조사하여「로마」로 연락한 조선 왕국의 개관 안내와 조선 교회의 피어린 역사의 기록은 뒷날 달레 신부에 의하여 한국 교회사(Hist ore do I’Eglis dos Coree)로 편술되어 조선 왕국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구 세계에 소개하는 한편 한국 천주교회의 영광된 교회사를 후세에 전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1860년 10월에 베르뇌 장 주교는 프랑스 본국의 누아르 신부에게『이곳 신도들 사이에 널리 전해진 복음서는 신도들을 깨우치고 정열을 불러일으켰으며 새로운 신도들이 도처에서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이때 이미 성경의 일부가 번역되어 교인들 사이에 읽혀지고 있었으니 이것이 뒷날「성서직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오늘날 희귀하게 남아 있는 한글 성경직해의 사본이 병인박해 이전의 것이며 1853년 10월 당시의 조선교구장 대리 메스트르 이 신부는 포교성성 장관에게『한글로 쓰인 것으로는 요리간답 사사성경 강론집 성인전 준주성범 기도서와 그 밖의 몇몇 책들이 있다』고 보고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보아 1853년경에는 사사 성경의 상당한 양이 발췌 번역되어 신심생활에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864년 8월에 베르뇌 장 주교는 외방전교회 신학교에『우리 두 인쇄소는 금년에 네 가지 새로운 책을 찍어 내었습니다. 세 가지 다른 책은 내년에 낼 것입니다』라고 연락하고 있다.
그 책들은 교리문답 1권 工課 한 질 4권 禮規 2권 神命初行 2권 회죄 直指 1권 領洗大意 1권 省察觀要 1권과 主敎要旨 1권 등 8종 13권의 책이다. 이 가운데 공과는 첫 번째 목판인쇄소에 먼저 간행되었던 것이다.
이 모든 한글 교서는 주로 다불뤼 안 부주교의 손에 의하여 저술되거나 번역된 것이었고 그를 도운 한국 교인은 장준소와 황석두였는데 이들이 저술과 번역을 도왔다.
한편 목판 간행의 책무를 담당하였던 인물은 최형과 전장운이었다. 최형은 김대건 신부와 동도 상해에 건너갔던 인물의 한 사람으로 1862년 베르뇌 장 주교의 명을 받아 임요셉과 같이 4년간 스스로 글씨를 쓰고 본판을 만들어 수천 권의 한글 교서를 간행 영포하였고 전장운도 장 주교 밑에서 출판을 도왔던 인물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순교하고 그의 집은 수색되어 목판과 인본이 압수되어서 소각되었다. 이리하여 박해하에서도 비밀리에 운영되어 수다한 교서를 목판 간행하여 신익을 주었던 사업이 궤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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