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때는 나자렛 예수가 곧 그리스도, 메시아이다라는 믿음이 너무나 확고했으므로 그리스도라는 말이 예수의 본이름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면 과연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우리는 습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성(性)과 본명(本名) 으로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인 것이다. 예수부활에 관한 묵상을 한 다음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뜻이 있는 일이다.
이 부활 사건을 통해서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온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생전에 행했던 일들 특히 병자를 낫게 한 일들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메시아적 활동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공적 활동을 하는 동안에 당신 자신을 메시아라고 지칭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이를 고백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으로 베드로의 대답을 유도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꼬8, 27~29). 그리고 나중에 수난을 당하며 대사제가 심문을 하는 장면에서도 그렇게 했다. 『대사제가 한가운데 나서서 예수께『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토록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그대는 할 말이 없는가?』하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문 채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그대가 과연 찬양을 받으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렇다』하고 대답하셨다 』(마르꼬14, 60~62).
메시아는 무슨 뜻인가?
메시아를 희랍어로 그리스도라 한다. 메시아 그리스도란 원래 기름 바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구약에서는 사제, 예언자, 왕에게 기름 바르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특별한 소명파견품위의 표시였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모두 참된 메시아는 나중에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이 때문에 유태인들은 오늘까지도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 살고 있다).
장차 오실 메시아는 여러 가지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어떤 때는 「정치적 지도자로 이해되어 백성들을 곤궁과 박해와 식민생활에서 해방시켜주실 분으로 믿었고, 어떤 때는 세계 심판자」의 모습을 메시아와 결부시켜 「야훼의 날」 에 만백성을 심판하고 선택된 이스라엘에게는 큰 권력을 주어 영광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몇 예언자들은 개별적으로- 특히 이사야-메시아를 「평화를 가져오는 분」으로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잘못을 대신 짊어지고, 비록 자신은 죄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고 죽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죽음으로써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룩하는 분으로 묘사했다.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이사야53, 5).
마지막에 말한 메시아상이 예수의 메시아모습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상의 권력이나 정치적 영광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지배하시는 세상 즉 정의와 사랑과 화해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한 것이다. 이 메시아에게는 사람과 하느님을 일치시키기 위한 「새로운 계약」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는 그리스도며 주님이다
구약의 관점에서 또 구약의 희망으로 삼은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말에 「예수는 주님이다」라고 첨가하게 되었다. 구약에서는 「주님」이란 오직 하느님에게만 해당되는 품위의 표시이다. 신약의 「주님」은 구약의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의 번역이다. 그 뜻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이 현조하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해당될 수 없는 그런 모습으로 현존하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가장 오래된 성경전승에서 비롯된 것이며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의 필립비서의 그리스도 찬미에서 지적한대로 자기가 그리스도께 회두할 때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안에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다』(필립비2, 11:1 고릴토 12, 3)라는 신앙고백을 발견할구 있었다. 또 로마서에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고백을 인영하고 있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서10, 9 )아마도 이 신앙고백은 전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가장 오래된 팔레스티나 전례에는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을 『마라나타』(Ⅰ고린도16, 22:요한 묵시록22, 20)라 불렀다. 이 호칭은 「우리 주님이 오셨다」또는 「우리 주님, 오십시오!」라고 번역될 수 있으며 이것이 원래의 뜻일 것이다.
오늘날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전례 안에 중심적 구실을 하고 있다. 이것은 「기리에 엘레이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모든 전례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로 끝맺고 있다. 신약은 미사전례를 「주님의 만찬」(Ⅰ고린도11, 20)이라 부르고 우리가 이를 위해 모이는 나날을 「주일, 주님의 날」(요한묵시록, 10)로 부른다.
「나는 한분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교신앙의 가장 중심교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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