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는 노력과 고통 속에서 농번기를 보내는 선량하고 순박한 농민들은 주일미사 불참에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몸과 마음이 다함께 피곤하고 어두워지기만 한다. 차제에 본보는 교회법 박사 김영환 신부의 교회법 제1245조의 해설을 통해 농번기 농민들의 구제 방안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註>
법(法)이란 공선공익을 위해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누구한테나 어떠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는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원칙에는 예외가 항상 따르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돈을 받고 일을 해주기 위해 계약을 했다 하더라도 갑자기 몸이 아파 일을 못할 때에는 하기로 한 일을 다 못했다 하더라도 하는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을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손해가 있다 하더라도 하는 수 없다. 즉 법은 공선과 공익을 위한 것이지만 불가항력적인 경우에 개인이나 어떤 단체가 그 법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입법자의 정신이다.
뜨리덴띤 공의회에서도『특별한 경우에는 법의 매듭은 융화되어야 한다』(Conc Trid Sess25-18)고 말했다.
오는 입법자의 정신이 무엇이가를 알아야 한다. 법은 사람의 자유를 옭아 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한 개인이 법에 속박되어 불가항력적인 것까지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선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할 때가 있지만 그것은 공선과 개인의 이익을 비교해야 한다.
면제란 특별한 경우에 적당한 공위로부터 받는 법의 융화다. 면제는 법의 해석이나 핑계와는 다르다. 이것들은 어떤 경우에 권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면제는 법의 권위가 개입된다. 법의 모든 경우를 이 지면에다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주일이나 축일에 있을 수 있는 교회 법규에 관한 것만을 말하고자 한다.
교회법 제1244조 제1항에는『전 교회를 위한 공통축일ㆍ금육제ㆍ단식제를 제정ㆍ변경ㆍ폐지할 권리는 교회 최고 권위자만이 가진다』고 되어 있고 동제 1245조 제1항에는『교구장뿐 아니라 본당 신부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자기에게 속한 신자 개개인이나 그 가족(그 가족이 구역 외에 있다 하더라도) 또는 자기 구역 내 살고 있는 자들에게도 축일에 관한 일반법과 금육제 및 단식제에 관한 일반법 등을 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농번기에 농민들이 주일날 미사에 참예 못하고 또 비가 오는 시간을 맞추어 모내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주일미사나 대축일 미사에 참예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시골에 있는 본당 신부들은 농민들의 양심을 가볍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미사에 참예 못하는 것을 큰 죄로 알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일하러 안 나갈 수 없는 농업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이럴 경우 주일이나, 축일에 대한 일반법을 본당 신부 재량으로 면제해 줘야 한다고 믿는다.
농민들은 일반적으로 지식이 희박하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마음만 졸이는 경우가 없지 않다. 시골에서 고백성사 때 들어보면 주일미사에 참예 못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유는 논에 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본당 사목에도 차질이 없어야겠고 개인 신심에도 차질이 없어야겠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것까지 속박하는 것이 입법자의 정신이 아닐진대 법 시행자가 문자 그대로의 법에 속박을 강요한다면 잘못이다.
법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다. 법 이전에 사람이고 생명이다. 농업을 생계로 삼는 농민들에게는 농번기 동안에 1년의 전부가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의 법이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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