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를 행복하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는 그 소리를 무척 담담하게 말하더군요. 조금도 비장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잠시 내가 잘못 들었으려니 했습니다.
행복?
나는 잠시 그 문제를 생각해 보았지요.
여지껏 행복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어느새 결혼을 생각하게 되다니…
그제서야 나는 내가 왜 결혼을 해야 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상 결혼을 한다는 것은 행복이라는 문제와 긴밀한 함수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혼하면 행복해지리라는 희망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지 불행하기 위해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행복이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목마른 자의 물과도 같은 것이 아닙니까?
나도 행복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해지려고 결혼을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나는 그만큼 결혼에 대해서 수동적이며 소극적이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을 과연 어느만큼 행복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결혼이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한다면 다만 필요에 의해서 편리하게 살려고 결혼을 한다면….
나는 지금도 결혼에 대해 아무런 기대가 없는사람이 결혼한다는 것은 반대하고 싶을 뿐입니다.
행복에 대한 의지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결혼에 대해서 기대가 없는 사람이라면 깨끗하게 독신생활을 유지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이야기가 엉뚱한 대로 빗나가 버렸지만 내가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뭐니뭐니 해도 당혹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나는 그의 말뜻을 세속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날개를 잃은 새와도 같은 존재다. 내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따라서 나는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으며 남들처럼 집이나 의복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극히 막연하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 순간 내가 맛본 감정은 암담과 희망이었어요.
식민지의 젊은이로서 나갈 길이 막혀 있는 우리로서 권 청년의 말은 조금도 에누리가 없는 정직한 말이라 여겨졌지요.
그의 에누리 없는 정직함이 곧 내게는 큰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더군요.
그것은 마치 산더미 같은 잡석 가운데서 희귀하게 빛나는 옥석을 가려냈을 때의 기분과도 같았습니다. 나는 희한한 감동에 사로잡혔어요. 무슨일이 있더라도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정열에 휘말렸지요.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절망을 앞에 두고 허무 속에 빠져 있는 이 천재(웃지 마세요. 나는 진심으로 그를 천재라고 믿었으니까요)를 북돋는 데서 찾자고 말입니다. 나는 그만큼 내 자신을 과신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내 힘으로라면 불가능한 일이 없으리라는 맹신에 가까운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나라는 여성 속에 깃들어 있던 모성의 작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날개를 잃은 새에게는 새로 날개가 돋아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자. 길 잃은 새에게는 나침반의 역할을 되맡아 주자는 식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이런 생각 역시 나중에 붙인 장식에 불과하겠지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나는 조건 없이 그를 좋아했던 것거 같습니다.
아마 그것이 내가 그를 택한 이유의 전부이겠지요.
이러한 감정의 척도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를 빈번히 보아오는 터이기는 하지만 나는 역시 이 척도만큼 가혹하도록 진실한 자(尺)는 없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맏딸 명이에게 좋은 사람과 결혼하라고 권합니다. 남의 눈에 아무리 보잘것 없는 인물로 비치더라도 내 마음이 무조건 그에게 쏠리고 그를 좋아한다면 그 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권천연의 자신 없는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내가 그를 어김없이 좋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동기가 되었던 거지요.
솔직하게 말해서 그와 더불어 살 수만 있다면 하루의 끼니를 걸르고 방 안에서 우산 쓰고 비를 피하더라도 행복할 것만 같았으니까요.
친정 어머님 말씀을 빌린다면 그렇게 되어서 나는 내 앞에 놓인 잘 차려진 밥상을 걷어차게 되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또 이렇게 역으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사람의 심리는 야릇하게 비뚤어진 데가 있어서 관심을 보이는 쪽보다는 무관심한 쪽에 마음이 끌리는 수가 많으니 그런 식으로 결혼에 대한 무관심을 표명한 그에게 왈칵 쏠렸던 겐지도 모르겠다고.
어쨌거나 그를 택한 것은 나 자신이었고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 내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능동적이었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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