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최고도로 발달한 문화 문명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믿음이나 하느님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수도자나 성직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의 방향마저 다르게 하고 있다. 많은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사회 생활이나 인간 생활의 각 분야에 종사 봉사하고 있음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같이 수도자들이 옛날과는 달리 봉쇄구역을 벗어나 사회와 인간 생활 속에 가까이 접함으로써 복음을 전하고자 하기 때문에 사회와 시대의 변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요구들이나 난점들을 해결해야만 하게 되었다.
따라서 수도자들이 사회와 시대의 요구들을 따르려다가 수도자의 본위치나 사명을 망각하거나 참된 수도생활로부터 멀어지기가 쉬운 것이다. 현재 여러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많은 수도자들이 그들이 맡은 과중한 책임이나 의무 때문에 또는 사회나 시대의 요구들로 말미암아 수도생활을 하는 데 정신적으로나 욕체적으로 방해를 받고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로 외적 포교사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수도자의 본질적인 내적 생활에 더 충실해야만 하겠다. 현재 수도자들이 종사하고 있는 일들은 대개 본당ㆍ학교ㆍ병원ㆍ고아원 등등이다. 그러나 곳곳마다 젊은 후배들이 없어 고난을 겪고 있으며 특히 유럽에서는 여러 학교나 병원들이 문을 닫아야 할 실정이고 수도원에는 나이 많은 자들만이 남은 곳이 허다하다.
이러한 현실을 목격, 체험하는 수도자들은 젊은 세대와 물질문명에서 오는 허영, 사치나 혹은 윤리 도덕이 타락된 데 원인을 붙이기에 앞서 먼저 교회 안에서의 수도자들의 위치와 사명과 의무를 깊이 각성하고 그에 상응하는 참된 쇄신을 가져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수도생활에 대한 것들을 부분적으로만 취급한 것이 아니고『모든 조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의 모습에서 반사되는 그리스도의 밝은 빛으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싶은 마음(LGIㆍI)』에서「수도생활에 대한 교령」을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수도생활이「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서만 따로 취급된 것이 아니고 다른 여러 장(章)에서도 거듭 언급됨으로써『복음적 권유를 서원하는 수도 신분이 비록 교회의 교계적 구성에 관계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생명과 성화에 속하는 것이 확실하다』(LG44ㆍ4)는 것을 명백히 표명하고있다. 왜냐하면 복음적 권유는 특별한 모양으로 교회와 그 신비에 그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므로 그들의 영적 생활도 교회 전체의 선익을 위해 바쳐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나라를 사람들 영혼 안에 건설하고 견고케 하며 그 나라를 곳곳에 전파하도록 할 의무가 생긴다. (LG44ㆍ2 참조)
그러나 때때로 수도자들에게서 그들의 영적 생활은 단지 자기들만의 성화를 위해서 하는 생활인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뚜렷한 증거와 크리스찬적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신자들이 성세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현토록 불려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이론적인 하느님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보다도 그의 일상생활 중에서 어느 사람과의 만남이나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믿을 수 있게끔 뚜렷이 나타날 때에 그 사람은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세상에 대한 크리스찬의 사랑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세상과 세속과는 구별되어야 하겠고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서 세속적으로 됨을 피해야만 한다.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에 많은 수도원에서는 세상에 봉사하기 위한 방법 실천에서 내적인 것에보다는 외적인 면에 더 큰 변화를 가져왔고 따라서 수도원 단체나 수도자 개개인에게 갈등과 불안을 주어서 많은 이들이 수도생활을 포기함으로써 또는 어떤 다른 쉬운 방법으로 그 갈등이나 불안을 해소시킨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수도생활은 특히 종말적 상징적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수도자들은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함으로써 특수한 이유로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때문이다. 특별히 수도생활이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상징적인 것은 수도생활이 바로 세상에서 하느님 성부께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수도자들은 제일 먼저 하느님을 찾아야 하고 어떤 환경이나 상태에서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비로소 세상 구원과 교회 건설에 필요한 이웃 사랑이 생기게 되며 또한 이 사랑이 복음적 생활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뚜렷하게 하는 사랑의 생활은 오직 기도정신과 기도로써의 내적 생활만이 가능한 것이다.『너희들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라』(꼴로세서 3ㆍ17)
현대 사회에서 수도자들이 맡고 있는 직책상 여러 가지 의무에 쫓기고 있어 어떻게 하면 내적 생활과 외적 행동의 요청과의 사이에 일치와 조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한다. 생활의 일치를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를 직무 수행의 모범으로 삼는 것이라고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14ㆍ2에서 말해주고 있다.
모든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하는 기도정신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또한 교령은 어떠한 수도단체든 간에 관상을 사도적 사랑에 연결시키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약함 때문에 이 두 가지를 잘 조화 연결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언제나 눈 앞에 두어야 할 최대의 목적이기도 하며 그 실천을 위해서는 항상 노력이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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