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지만 그는 사모관대에 족두리를 주장하며 조금도 물러나질 않습니다.
지금이라면 납득도 가지만 때는 일제 말기의 초비상 시국이어서 결혼식 같은 것도 냉수 떠놓고 국민복에 각반 친 모습으로 신사에 가서 간략하게 치루라는 판국인데 사모관대가 다 무업니까.
그러나 오해하진 마세요. 그가 무슨 민족의식을 발휘하려는 저항의 한 방법이라든가, 그런 목적의식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닙니다.
다만 사모관대에 족두리를 쓰지 않고서는 의식(儀式)을 치룬다는 실감이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식이 중요하지만 영웅도 시속을 따르랬다고 지금 어디 가서 사모관대에 족두리를 구하겠느냐고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자기 의사를 관철했습니다.
그는 어느 유서 있는 집안에서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빌려왔습니다.
나는 신식으로 면사포를 쓰고 싶었지만 나의 조그만 꿈은 이렇게 어이없이 깨지고 말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지요.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서 마련한 결혼 의상이었으나 우리 결혼식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선경이의 신랑은 정신이 좀 이상하다는 소리가 나돌기 시작한 것이 결혼식 전후의 일이었으니 그의 외고집은 꽤나 야릇하게 반영되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결혼식 사진만 보면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리곤 합니다.
『사모관대가 만족했던가 보지? 아버지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라 있는데』
『그 얼굴이 울상을 짓고 있는 외할머니 얼굴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야』
『외할아버지랑 딴 사람들은 모두 성난 사람처럼 시무룩해 있고…』
『엄만 또 뭐야 족두리를 쓴 것까지는 좋은데 활옷은 왜 안 입었지?』
『아버지가 아무리 찾아다녀도 그것만은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대요』
『앗핫하! 게다가 연지곤지는 누가 찍어 주었지?』
『아버지가 손수』
『엄마 얼굴은 짬뽕 얼굴이야.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주 묘한 표정이거든』
명이의 표현은 정확한 셈이지요. 실상 그랬으니까요. 모두 괴인 취급을 하는 신랑과 야릇한 결혼식을 올릴 때는 정말 말 못할 불안감에 휘말리게 되더군요 결혼 첫날 밤 그는 매우 진지하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은 몸이나 마음이나 유감없이 죄다 쓰고 갈 작정이오』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이 무어길래요. 오직 적수공권이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모르는 소리. 우리에겐 영혼이 있지 않소. 육체가 있지 않소. 영혼을 불태우고 육체를 불태워서 완전히 재가 될 때 인생은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오』
우리의 결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결혼 후 얼마 안 가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건 우리의 생활과 직접 연관이 있는 문제라서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후에 해방을 맞았고 남편은 자연스럽게 중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생활은 친청 아버님께서 이럭저럭 도와주셔서 대과 없이 꾸려갔지만 막상 남편이 취직된 이상은 친정의 원조를 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죠.
남편에게 경제 관념이 거의 없다시피 희박하다는 것은 미리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약간 상상을 넘나간다는 것은 그동안의 생활을 통해서 알고는 있었어요. 오랜만에 남편이 월급 봉투를 내밀어 줄 때는 이것이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요.
그동안 출가외인인 딸자식에게 어머니 모르게 생활비를 마련해 주시던 친정 아버지의 고초를 생각하거나 잇달은 출산으로 맥을 못 추는 나는 남편이 결혼 전에 하던『나는 누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던 실토가 내가 생각하던 세속의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될 때마다 그를 비정스러운 이기주의자로 혹독히 몰아붙이는 나로 서서히 변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는 학교 교사이면서도 아침부터 술을 먹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월급 봉투를 봉한 채 내밀어 주니 꿈만 같이 생각되었던 것이지요.
월급 봉투는 일 전 한 푼 축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몰인정한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던 내 마음가짐을 뉘우치는 기분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가 맨날 통금 직전이 아니면 돌아오지 않는 술값은 어디서 충당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생활비와 술값의 구분은 지을 줄 알기에 그러는 거거니 하고 낙관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는 그날로 밀려있던 외상값을 물고 쌀도 몇 말 사고 연탄도 몇십 개 사놓았습니다.
월급 다음날이었어요.
난데없는 젊은 여자가 우리집을 찾아왔습니다.
『여기가 권세연 선생님 댁인가요』
『네 그런데 어디서 오셨는지요』
『아니 내 참 오래 살다 보니 희한한 사람 구경도 다 하지』
그녀는 주인이 권하기도 전에 마루 끝에 덜썩 주저앉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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