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중천에서 이글이글 타는 불수레가 불화살을 마구 뿜어대면 지구는 열병을 앓는다.
이때쯤 사람 저마다의 눈에는 연옥이 아른거린다. 그래서 그 화염을 피하여 물가로 산으로 총총히 몸을 옮기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사람에게는 잠시 생활 궤도를 이탈하여 패곡을 벗어나 보는 기분 전환도 정신 위생상 요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시는 악마가 지배하고 자연계는 신의 품 속』이라던가. 잡다한 일로 하여 신경이 극도로 피로한 도시인에게는 피서가 사치만일 수는 없는 생고로부터의 해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육신의 어버이 대지에 접근하여 친숙해질 기회를 갖는다는 것-여섯 자매 몸이 영원히 돌아갈 고향땅을 더듬어 거기에서 진정 하느님의 손길을 실감하고 그 음성을 마음의 귀에 새기게도 되는 여름 휴가는 내게 있어 결코 귀족 취미 아닌 자아로부터의 해방인 것이다.
나는 중학시절부터 방학 때마다 여행을 즐겼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가는 길-작다란 여행 가방을 옆에 끼고 차창에 펼쳐지는 파노라마에 마음을 주면 까닭없이 대수로운 여정에 취하는 맛.
그럴 제면 퍼덕임 한 번에 구만 리를 간다는 대붕을 본뜬 내 공상의 날개는 욕심껏 구천을 활개치곤 한다.
장거리 여행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고적 탐험을 가곤 하였다. 소년시절부터 민속 찾기에 기를 쓰면 종형(杜鉉)을 따라 유서 깊은 옛 절ㆍ성벽ㆍ누각을 찾아가 이끼 서린 돌비석의 비문을 알듯말듯 한대로 살피기도 하고 깨어진 기와쪽을 주워 들고 머릿속에 옛 일을 더듬는 시간의 흥취. 낯선 풀포기를 보면 뜯어서 냄새도 맡고 책갈피에 끼우고 팔벼개로 산등성이에 벌렁 드러누워서는 무한대의 높푸른 공간에 점철된 흰 구름 그 가장자리의 변모해 가는 모양에 시간을 잊기가 일쑤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싯적 습성이 나에게 문학을 싹 틔워 주었고 두현 형은 어쩔 수 없이 민속학자가 되게 하였다고 본다.
피서법도 가지가지다.
선풍기며 에어콘이나 얼음덩이를 외면한 채 지하에서 금방 퍼올린 펌프물을 물통 한가득 담아서 책상 밑에 놓고, 발을 담근 그대로 연구 논문에 열중하는 자연파도 있는가 하면 영산을 뱃속에 신축할 양으로『얼음아, 모조리 내게로』로, 물량으로 여름과 대결하려드는 딱지가 덜 떨어진 도심파도 있고, 해수욕장 풀장을 누비는 이색 순례자 (?) 도 수두룩하다.
제 나름의 피서이니 다 좋다. 하지만 등산은 어떨까?<이열치열>이라 하였거니. 도피성보다 진취적으로 한발한발 정상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흘리는 땀 방울방울의 값진 무게-그 질량감이 헛되지 않아 정상을 정복하였을 때의 그 살맛! 그 법열에 가까운 통쾌함! 부르튼 발을 절룩이며 산정에 올라서 혼자만이 맛보는 삶의 환희! 바로 그것이다.
『소년이여! 대망을!』(클라아크)
요즈음 젊은이들은 흔히 여가를 거리에서 서성거리거나 어둑한 다방 구석에 웅크려 광적 음악에 침식하면서 허송함을 보겠는데 혼탁한 자연 속에서야 어찌 내일의 빛난 인생을 전개시킬 웅대한 기상이 싹 틀 수 있겠는가?
청운의 꿈을 기르고 넓고 높은 기상을 지니기 위해서도 대자연에 파묻혀 맘껏 숨쉬는 버릇을 익혔으면 싶어진다.
값진 책을 옆구리에 끼고 심산유곡을 찾아 헤매는 것도 따분한 일상에 없지 못할 소중한 쉼표라 하겠다.
알프스산 중턱에 무명 안내인의 무덤이 있다. 그 묘비명은『오르면서 잠든 자』
그렇다! 우리도 인생의 도상에서 값진 길표를 따라 오르고 오르다가 사라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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