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천주교 신자들에겐 옹고집에 변덕쟁이며 폭군일수밖에 없었던 대원군도「권불십년(權不十年)」입땀은 이기지 못한채 1873년 며느리 민비(閔妃)와 유림(儒林) 일파의 반대세력에 밀려나니 척화를 부르짖으며 쇄국으로만 치닫던 조선정부와 외교정책도 점차 개국(開國)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집권 초기 집요하게 통상을 요구해오는 러시아의 세력을 막아내는데 당시 국내에 와 있던 서양신부들의 힘을 이용하려 했던 대원군이 변덕을 부리지 않고 신부들을 만나보았던들 1866년부터 6년에 걸친 병인교난(丙寅敎難)의 피비린내 나는 참상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한가닥 희망을 짓밟은채 모진 박해의 채찍을 휘둘렀던 대원군의 퇴각은 천주교 신자들에겐「신앙 자유의 희망」이기도 했다.
대원군은 섭정 2년후인 1865년 천주교인들의 진언에 따라 서양신부들의 힘을 빌어 러시아의 침입을 막고자 했으나 불과 며칠 사이에 잔혹한 박해자로 변신한데는 조정내 반천주교파 대신들의 농간과 그 해 4월부터 재건하기 시작한 경복궁의 재원이 달리게 되자 당시 서양신부들이 갖고있던 많은 재화를 탐한데 있었다.
박해자로 변신한 그는 이듬해인 1866년 정초부터 시작해 1872년까지 6년간 전국 곳곳에서「선(先)참후계(後啓)」의 방법으로 수많은「천주학쟁이」의목을 베니 역사상 가장 길고 잔인했던 병인교난을 주동하고 10년 섭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셈이었다.
따라서 대원군이 불러일으킨「병인교난」은 멀리 1791년부터 거슬러 기록되는 네차례 큰 박해(신해ㆍ신유ㆍ기해ㆍ병인)의 마지막 장이기도 했다.
대원군의 퇴각과 조선정부의 개국 기운은 그것이 조선 근대사를 소용돌이속으로 몰아넣은 일본을 비롯한 러시아ㆍ미국ㆍ독일ㆍ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개국 요구와 시대의 여건에 따른 역사의 한 필연적인 과정이라 해도 오로지 신앙 그것 때문에 긴 세월을 인간의 힘만으론 참아내기 어려운 박해의 고통을 입어온 천주교 신자들에겐 신교자유(信敎自由)의 한줄기 아침햇살이 아닐수 없었다.
그 후 조선정부는 1876년 일본과 강화도에서 병자수호조약을 비롯해 1880년 한미 수호조약, 한영, 한독 수호조약을 통해 서구열강과 근대적인 국제조약을 맺어 개국의 문호를 넓히면서도 서양인의 전교를 공공연히 허락지 않았다. 1886년 한불 수호조약에 이르러서야 전교자유를 공문화했다. 이 한불 수호조약에서 전교를 허락하기까지도 많은 신자들이 옥리의 횡포한 손길에 맞아죽거나 굶어죽어갔고 한가닥 신교자유가 있으리라는 희망속에서도 공포에 떨어야 했던 사실은 이 땅에있어 신교의 자유가 얼마나 절실한 염원이었던가를 엿볼수 있다.
그러나 대원군의 퇴각 이후 개국기운과 함께 신교자유의 여명이 서서히 오고 있었음은 사실이었으니 병인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탈출 그 후 6대 조선주교가 된 빠리외방 전교회의 리델ㆍ이(李)(MㆍRIDEL) 주교의 주선으로 10년만인 1976년에 네 신부가「허가 상품이아닌 밀수품」인양 입국하여 조선교회를 재건하다 이(李) 주교는 1878년 피체되었으나 참수가 아니고 추방되는 이변(異變)이 일어났다.
병인교난후 10년간 목자없는 세월을 보낸 조선교회가 전기 李 주교를 비롯한 네 신부의 입국을 맞아 국내외의 미묘한 정세를 살펴가며 재건에 임하게 되는데 여명기라 할수있는 이때 이들 성직자의 적절한 입국은 그 후 한국 가톨릭을 오늘의 반석위에 올려놓는데 있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1876년 이 주교는 선발대로 백 신부(MㆍBLANC)와 최 신부(MㆍDEGUET)를 입국시킨후 2년후에는 자신이 김(MㆍROBERT) 정(DOUCET) 두 신부를 대리고 입국했다. 이들은 신교자유가 오리라는 희망속에서 아직도 서슬이 퍼런 관헌의 눈을피해 어떤 때는 밤 한톨로 하루를 견디며 쫓기는 신세가 되어서도 교우마을을 찾아 영세를 주고 고해를 들으며 눈물과 기도속에 불쌍한 조선교회의 앞날을 설계하고 그 설계를 하나씩 실천해 나갔으니 이들의 활약이야말로 오늘 한국교회의 기억속에 되살아날만한 것이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