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은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이만큼 큼직한 사건들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놀라게 했다. 급템포로 변해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이에 대처하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세계 각국 교회의 움직임은 정세변화와 정비례의 현상을 보였다. 차제에 72년 한 해 동안의 세계 종교계의 움직임을 5회에 걸쳐 돌이켜보기로 한다.
1972년의 미국 종교계는 영성의 급증 및 공중질서와 미풍양속에 대한 관심의 증대 등이 괄목할만 하다.
또한 작년 한 해 동안 종교 공동체들과 종교적 문화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영신적 부흥의 단계들로 간주하는 것을 직면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카리스마적 운동이나 新성령강림 제운동 등에 있어 강렬한 복음 전도자의 공격이나 성장이 있었다. 동시에 72년 미대통령 선거에서는 종교에 대한 공약이나 우선권이 전례없이 작용한 것도 특기할만 하다. 특히 정교회의 故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의 서거와 신임 디미트리오스 1세 총대주교의 출현을 비롯 미국교회 협의회(NCC) 의장에 처음으로 흑인이 선출됐고 역시 세계교회 협의회(WCC) 사무총장에 흑인이 처음 등장한 것도 주요사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NCC 총회를 마지막으로 개최한 것과 일치운동에 있어 진보와 좌절의 연속을 보였는가 하면 북에이레나 남아프리카 및 중동 등의 세계 분쟁지역들에 대한 종교계의 계획적인 참여 등이 72년 종교제의 두드러진 활동상이다. 먼저 카리스마적 운동의 성장의 강도는「노틀담」성당에서 개최된 제6차「국제 카리스마적 쇄신회의」에 1만2천여 명이 참석했으며「미네아폴리스」에서 있는 루터파 비공식 카리스마적 회의에는 6천명이 참석했다. 또한「쥬리히」에서는 가톨릭과 비가톨릭 성령강림 교파간 처음으로 공식대화를 나누었고「스톡홀룸」에서의 카리스마적 일치회의에는 1만여 명이 모였었다. 72년은 또한 복음화에도 강력한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6월「달라스」에서「그리스도의 캠퍼스 십자군」이 주최한 복음화대회(엑스폴로72)에는 8만5천명의 젊은이가 참석했으며 12월 첫주 대림절이 시작된 그날 1973년도에 실시하려는 전미국 복음전도사업(키73)의 예비기간이 열렸는데 여기에는1백30여 개의 그리스도교 교파와 타종파 및 소수의 가톨릭교구 등이 참가했었다. 침례교회의 빌리 그라함 목사는 많은 군중에게 설교하기 위해「버밍함」 「샬럿」 「클레블란드」 그리고 침례교 전교사업 1백주년을 기념한「나갈랜드」(인도의 외딴영토) 등지를 돌아다녔다.
우주비행사이며 남부 침례교 신도인 제임스 이르원씨도 복음화 사업에 투신했다.
히피 생활양식과 같은 옛종교의 혼합물인「지저스 무브먼트」는 어느정도 잠잠해졌고 가정에서 뛰처나온 젊은이들을 고발한「신의 자녀들」은 국내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교회생활의 보다 관례적인 측정 즉 교회신도 통계표에 있어서는 최근 소수의 몇몇 교회들은 쇠퇴일로를 걷고있는 반면 다른 교회들 특히 보수파 그룹들은 그들의 성장을 옵서버들에게 인용하고 있을뿐 명백한 증거를 내보이지는 못했다.
그 외 일반적으로 경제적 수익은 증가했으나 이같은 증가는 가끔 인폴레로 인해 상쇄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미 대통령 선거에 있어 닉슨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다수 가톨릭 표를 차지한 최초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는「뉴욕」의 자유낙태법 철회를 성취시키기 위한 테렌스 쿡크 추기경의 노력에 찬사에 서한을 보냄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을 만족시켰다.
몇몇 전문가들은 동서한이 전국적인 반낙태 취지의 부활의 한부분으로 보았는데 그 후 주의회는 철회를 찬성했으나 넬슨 록펠러씨는 철회법령을 거부했었다.
그뿐 아니라 록펠러씨의 동생 죤 D 3세가 주관하는「인구성장과 미국의 장래에 관한 대통령 위원회」를 통해 낙태의 찬성을 들고 나왔을때 닉슨 대통령은 가톨릭 측의 의견을 따라 그 반대를 강력 주장했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지난 10월 가톨릭 신자들은「생명존중 주간」을 설정하고 낙태ㆍ늙은이ㆍ청소년ㆍ가정 및 가난과 평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강력 표현하기도 했다.
사립학교 원조에 대한 닉슨 대통령의 장기적인 지원 역시 가톨릭의 표를 얻는데 큰도움이 됐다.
이에 반해 맥거번 후보는가톨릭 신자들에게 자기도 역시 사립학교들에 원조를 찬성한다고 밝히고 대통령으로서 그는 낙태입법을 지지하지 않고 오직 각주에 위임하겠다고 말했다. 맥거번 후보는 가톨릭 신자인 이글톤 의원을「러닝메이트」로 선정했으나 그가 신병으로 인해 사퇴하자 또 다시 가톨릭 신자인 슈라이버씨를 내세우기도 했다.
한편 약간의 예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유세전은 전쟁이나 인종차별주의 및 가난 등에 대한 교회의 행동을 강조하는 자유주의파들과 개별적 전화(轉化)나 각 개인의 도덕관념을 강조하는 보수주의파들 간의 논쟁에 따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감리교회 목사의 아들이며 그 자신도 한때 그 신학교서 수학한바 있는 맥거번 후보는 사회적 신념에 영향을 크게 받아 그것의 도덕적 이상주의를 반영시켰다.
그는 특히 일치 운동에 적극적인 수많은 교회 인사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그들은 특히 1972년도를 통해 종교계의 주요관심사였던 월남으로부터의 미군 철수에 대한 그의 서약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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