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 가운데는 자신의 병을 지레짐작해 막연히 근심 걱정하는 환자를 대할 때가 간혹 있다. 더러는 아예 의학백과사전을 다 뒤져보고 속으로는 틀림없이 무슨 병에 결렸구나 생각한 뒤 진찰실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다가 혹은 병에 관계된 TV프로를 보고나서 문득 병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병원을 찾기도 하며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동료가 무슨 병에 거리면 자신이 그런 병에 걸린 것 아닌가 하는 불안에 빠져 병원을 찾게 되기도 한다.
이때 평소 별 불편없이 지내던 사소한 증상이 갑자기 중병(重病)에서나 볼 수 있는 심한 증상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병력을 묻는 등(사실은 진찰과정에서 이 질문이 제일 중요하다) 자세히 진찰해보면 환자의 말과 같은 비슷한 증상은 다소 있으나 신체이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예가 적지 않다.
이들에게 일상생화에서 몇 가지 조심해야 함 점만을 일러주거나 경과만을 보기로 한 후 아무런 주사나 약도 주지 않거나 검사를 하지 않으면 몹시 의아해 한다. 선뜻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때로는 무슨 병이든지 병명을 붙여주지 않으면 쉽게 진찰실을 떠나려 하지 않거나 결국 다른 병원을 찾아가 똑같은 얘기를 하고 과정을 밟아 진찰을 받고 전번의사와 다음번 의사의 얘기를 비교해 본다. 그곳에서도 석연치 않으면 제3의 의사를 찾아 나선다.
일단 진찰을 받고 아무병도 없다는 확인을 받으면 마음이 놓이지만 며칠 못가서 또 걱정이 되살아난다.
의사가 오진한 것은 아닐까? 검사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혹시 암에 걸린 것은 아닐까 등등….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진찰중독증(診察中毒症)이 된다. 의학에서는 「건강염려증」이라고 한다.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일체의 진찰을 받지 않는 진찰거부증(診察拒否症)이다. 병이 들었다는 증세가 있는데도 진찰을 받으라는 권유를 한사코 뿌리친다. 『죽을병에 걸렸으면 죽는 거야. 자고로 인명은 재천(在天)이라 하지 않았나』하고 제법 대범해한다. 그러다 결국 다죽게 되어서야 병원 문을 두드린다. 진찰중독증과 기피증은 전혀 다르지만 그 원인은 똑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되는 것이다.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人生)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염려증(健康念慮症)은 마음의 병이다. 없는 병을 있다고 우겨대면서 화자노릇을 하고 있으니 병도 큰 병이다. 이들에게 충고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이것은 쉽지 않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몸에 병이 들었기 때문에 인생에 자신이 없다고 우겨대는 한 해결은 요원하다. 왜 내가 건강에 자신을 잃었을까, 왜 병에 대한 공포가 생겼을까를 살펴보아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자신의 삶을-지금까지의-재조명해봐야 한다.
자신의 성격과 어려움에 대처해 온 방법을 반추해 보면서 자신의 인생의 목표와 보람은 어떻게 되어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질병공포가 자신의 인생행로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깨달을 때 건강염려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둘째,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매진해 나가야 한다. 괜히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짓눌려서 아무 일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자시의 모습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실제 세계사에 공헌한 사람들 가운데는 질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열심히 일한 분들이 많다. 그들이 병을 잊고서 일을 했다기보다는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실제 있었던 병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이런 저런 노력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치료받을 용의를 가져야 한다. 신경정신과에는 결코 정신병에 걸린 사람만이 찾아 가는 곳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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