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리조나주립대에서 여성학을 강의하고 있는 재미 교포신자 남인숙 교수가 7박8일간의 일정으로 최근 북한을 방문했다. 남 교수는 이번 방북에서 특히 북한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생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본보는 남 교수의 북한방문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註>
깨끗하게 잘 정돈된 평양에는 시민들이 질서를 지키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만 들면 길일성과 붉은 신념에 대한 구호가 눈에 들어와서 평양은 구호의 천국이었다.
「우리 신념 붉게 피리라」라던가 「조선은 하나다」 「우리식대로 살자」등은 애교로 봐줄 수가 있으나, 다리공사를 현대식 연장 하나 없이 맨몸으로 떼우면서 「백번 죽어도 열 번 죽어도 이 공사는 끝내어야 한다. 4월15일까지」등은 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선동적인 구호들은 쉽게 읽혀질 수 있는 좋은 자리에 위치해있어 한국 같으면 약을 선전하는 제약회사나 미국이라면 담배회사 등에서 차지했을 것 같았다. 북한에서는 붉은 신념을 선전하는 김일성이 좋은 자리를 모두 장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만 공산국가내에서는 권력이 돈의 자리를 대신한다. 무산 계급의 해방을 외치는 줄 몰라도 모든 권력은 한곳에 집중되었다. 작년 여름 필자를 백두산에 안내했던 중국의 교포는 자기가 공산당원이라고 하면서 공산당원은 종교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북한에서도 사회주의 헌법 제54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함으로서 선택권이 있는듯하지만 『예수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그것은 본질에 있어 미신을 믿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북한 여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북경주재 대사관에 찾아가 「접대원 동무」라도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했던 적이 있는데, 대신 영사부장이 나와서 자기와 이야기 하자고 했다. 그때 그는 만나자마자 『여사께서도 벼락만 쳐도,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만 봐도 이렇게 합니까?』하며 두 손을 모아 절을 하고 금방 성호를 급하게 그으며 빈정댔다. 외교관에게 노이로제 증상이 있나 싶도록 해외교포들은 북한에 종교가 없다고 비난했고 친지나 고향방문을 일찍부터 원했던 이들 가운데 신앙심 깊은 사람이 많았다.
이번 북한방문을 마치고 일본의 모일간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장충성당에 번쩍거리는 고급 야마하 피아노가 들어와 있다니까, 재일교포 가톨릭신자들이 기증했을 거라는 말을 했다.
자동차조차 몇 안 되는 평양은 공해가 없어 정말 깨끗한데 평양시 선교구역 장충동에 위치한 성당주위는 좀 너절했고 성당은 아동공원 자리에 위치해있었다. 『아동공원 자리를 침범했다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면서 안내원은 강조했다. 성당 오른편에는 아이들이 타는 비행기 다섯 대가 공중에 멎어 있었다. 스위치를 넣으면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빙글빙글 도는 종류였다. 성당은 담장도 아담하게 되어있는데 담장 밖의 왼편은 수십 그루의 묘목을 심어놓았다. 비료가 없어서 채소가 귀할 뿐 아니라, 북한 체류기간 동안 생화구경이 그렇게 어려웠던 경험에 의해 이 나무들이 들어선 결과에 우선 감사가 나왔다.
아동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김일성은『아이들은 왕이다』고 말했고,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그의 옆에는 꼭 어린이들이 행복한 표정으로서 있다. 또한 지금까지 평양에서 제일 좋은 집은 어린이 궁전, 학생소년 궁전, 그리고 인민문화 궁전이었다. 『지금까지 제일 좋은 집을 어린이가 차지했다』는 말은 제13차 세계 청년학생축전으로 무려 2백60개의 건물에 47억불의 건설비를 들였으니 평양의 얼굴이 변했다는 뜻이다.
폭 1백50미터의 광복거리와 연결된 안골체육촌과 능라도 야외경기장, 양각도의 축구장과 각종시설 및 유경호텔 등의 건설현장을 돌아보면 47억불의 건설비에 땅과 노동력은 무료니까 계산에 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감이 들었다. 북한의 통계에는 가끔 엉뚱한 변수가 작용한다.
예를 들어 두개의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경제교류에 있어서 「교역」은 반대하고 「합작」을 원하는 북한이 합영회사 노동자의 임금책정에 이상한 계산을 해온다. 즉 노동자의 의료비와 주택비학비들은 국가에서 내니까 그 부담을 경영자가 국가로 환불하라는 형식인 것이다.
신축된 2백60개 대상의 건축물에 교회건물이 포함된 것은「제국주의자들에게 발판을 허용」한 것은 틀림없다.
그들은 항상 『제국주의자들이 종교를 이용하여 약소국가인민들에게 계급적 민족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혹은 『종교의 탈을 쓴 선교사들이 간첩활동을 하여 종교는 반공선전과 노동운동,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한다』고 했었다. 북한의 종교 정책을 1946년 후반기, 집회도 허용하지 않던 제한시절과 6ㆍ25때 탄압시절, 그리고 최근의 「이용」정책으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7ㆍ4남북 공동성명으로 대화의 문이 열리자. 1974에 「조선 기독교 연맹」이 WCC가입을 신청하여 실태파악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기각 되었다가 1976년 공산권내의 기독교 평화회의(CPC)에 가입했다.
그 다음 해외 방한인사 중에 북쪽이 고향인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대화의 분위기가 현성되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19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졌던 「조국통일을 위한 북한 해외동포 기독신자간의 대화」였다.
현재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장충동성당의 성영훈(요셉)경리담당 업무관계를 관리하는 총무는 「내 머리 속에는 부족되는 것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성당과 개신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이 거의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외화를 벌기에는 기막히게 좋은 건물이다. 요사이는 비자 신청란에 「종교」를 꼭 묻는다. 자랑스럽게 안내하고 돌아오면서 『마리아 부인이 그분께 생명을 주었다는 사실은 책에서 읽었다』고 공산당 엘리트는 말했다.
김일성의 존재까지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내원이 무어라고 했을지 몰라도, 필자가 북한의 강력한 여성 지도자를 만나겠다고 했을 때 개방파의 총수인 박종근씨는 성호를 그으면서 『이렇게 하고 기다리면 일 다 된다』고 놀렸다. 『물론 그렇게 했지요. 그것도 안하고 북반부에 여자 혼자 올 줄 알았습니까?』하고 반문했던 필자에게 그는 부탁을 들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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