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부대가 왜관성당에 주둔했던 당시 미군들도 함께 성당에 머물렀는데 미군 군종신부는 라띤어를 읽기는 하나 말은 못해서 대호를 나누지 못했다.
아르겐스 신부 미군종신부나 이렇게 3명이 주일미사를 지낼 수 있어 부수어진 성당이었지만 신자들은 은혜롭게 생각했다. 그리고 군인신자들의 헌금으로 평균 4백50원이었던 주일 헌금이 18~20만원에 이르렀다. 이로써 당면과제로 골치를 썩였던 성당수리비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성당과 학교수리에 필요한 목재는 벨기에부대에서 원조해주었고 쇠못 아교 등은 성당지하실에 있던 것을 보관하였다가 사용하면서 정성껏 작업을 진행시켜 나의 은경축 행사 때까지 모든 공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파괴되었던 성모상, 성요셉상도 피난차 왜관에 와있던 서울의 성물제작자를 알게 돼 무사히 고쳤다.
왜관본당 재임 때가 가장 고생도 하고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일 기억에 남고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51년 6월 10일에는 나의 사제서품25주년을 축하하는 은경축 행사가 벌어졌다. 사제서품일은 원래 5월29일 이었으나 최덕홍 주교의 은경축 행사가 이날 대구에서 열린 관계로 6월10일 주일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날 주일미사를 겸한 감사의 대례미사에는 최덕홍 주교를 비롯, 서정길 신부 박상태 신부 등이 참여, 사제생활25주년을 축하해주었다. 이어 미사 후 지하실에서는 축하연이 베풀어졌고 나는 이 자리에서 성당신축의 기쁨과 함께 은경축의 뜻깊음을 신자들과 나눌 수 있었다. 성당수리가 끝나고 군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나니 주일헌금은 그 전의 4백50원대로 다시 떨어졌다. 이때 나는 역시 하느님은「당신을 위해 쓰면 부족한 것을 주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성당신축을 해놓고 은경축도 지내고나니 조용한 본당으로 옮겨서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최 주교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최 주교는 『영천 화산본당이 조용하고 신자수도 2백50명 정도이니 그곳에 가서 사목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일제 때 시골공소 사목을 하면서 너무 시달렸던 터라(행정상 절치가 많았다), 나는 『어디든 관청소재지에 가겠다』고 말하고 『경산이 좋을 것 같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최 주교는 펄쩍뛰면 『남의 땅에 초가집공소인 그곳에 어떻게 가려느냐』며 『동창을 그런 곳에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경산은 관청소재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양본당에 소속된 공소였다. 그래서 그곳에 가고자했고 또 다른 이유는 대구소개령이 내려 부산으로 피난 갈 때 최 주교가 『경산쯤에 본당이 있으면 그곳에 옮겨가도 마음이 편할 텐데…』하시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주교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자15명인 경산에 가고자했다. 그해서 52년 6월 12일 경산으로 떠났다. 당시는 신부가 임명된 후 보름정도 여유를 주었는데 임명되고 일주일이 지난 후 주교님이『성당부지가 마련되었다』고 연락을 해주었다. 임명되고 경산에 가보니 부지는 연초장으로서 담도 없고 형편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포화로 엉망이었던 왜관성당도 고쳤는데…』하는 생각도 들고 모든 것은 차차 살면서 마련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왜관성당에 남아있던 철ㆍ못ㆍ유리등을 싣고 와서 수리할 채비를 갖췄다. 담이 없어 철조망을 하려했는데 최 주교가 짚차를 타고 와서는 『신부가 무슨 돈이 있느냐』며 『내가 담도해주고 고쳐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경산성당 신축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또 고향에 있던 동생도 대구 비산동에 옮겨오게 했다. 경산에서 계속 살고 싶을 정도로 경산본당은 신자수 15명 수준에서 점차로 커져 갔다. 정말 가족 같은 화목한 분위기였다. 경산을 떠날 때는 3백명 정도로 신자수가 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이 많이 들었던 본당이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