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이나 성당에서 마귀 들린 자들의 마귀를 쫓아낸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과학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있는 현대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서를 읽으면 예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대목을 읽을 때 역시 어떤 거부감을 일으키게 된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종류의 이야기이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놀라운 가르침의 권위에 압도당하고 있을 때 또 한 가지 사람들을 벙벙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때마침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있었고 예수께서는 그 악령을 한마디 명령으로 내쫓으셨다. 그 악령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는 기사로 보아 현대인의 안목으로 보면 정신이상자임에 틀림이 없다.
중병으로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들은 그제나 이제나 마찬가지로 우리주위에 있는 것이지만 사도시대에 사도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퇴치해야할 것은 마귀들린 일에 대한 미신행위 또는 이교적인 마귀관념이었다. 마귀 또는 악령은 그리스어로 「다이몬」이라고 하여 이교도들에게는 인간생활에 초인간적인 힘으로 해악을 끼치는 어떤 신으로 또는 영으로 간주되어왔다.
인생이라는 것이 불행이 없을 수 없고 그 불행은 요귀처럼 늘 내 안에 들어 앉아있는 것으로 생각 될 때 무엇인가를 해 볼 수밖에 없다. 이교들은 이 요귀를 신으로 섬기며 그 나쁜 장난을 달래거나 아니면 무당 같은 당시의 전문가를 모셔다가 구마예식(驅魔禮式)을 행하였다. 이 생활 모습은 이교도들의 침공을 쉴새없이 받아온 유대아인 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시적인 의학시대에 살던 그들은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을 마귀 들린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병마를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악귀로 생각했던 이교도들과는 달리 하느님을 위배한 죄 값으로 하느님의 영을 반대하는 마귀 또는 악령이 들어앉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랍비들의 일이었다. 그들은 제법 의술적인 방법을 써서 마귀를 쫓아냈다.
요하난 벤 자까이라는 랍비는 초근을 환자 밑에서 태워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하여 악령을 도망치게 했다고 한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것이 그런 구마방법이 아니고 한마디 말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사도들 자신도 주님한테서 받은 그 능력에 힘입어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낸다.
문제는 예수와 사도들이 정신병자를 보고 마귀 들린 자 라고 생각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를 비과학적, 몽매한시대의글로 매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서는 생활종교서적이지 과학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세상 사람들을 사악한세상에서 구원하는 종교가들이지 과학자가 아니다. 원자 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일상생활에서는 해가 뜬다 해가 진다고 말하지 지구가 한 바퀴 돌았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생활은 언제나 생활로 남아있다. 그리고 옛날에나 오늘에나 병마는 병마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적으로 병원균이 있고 치료약이 있지만 병마라고 불러서 지탄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아마도 앞으로도 영영 그 원인을 캐낼 수 없을 인생의 불행에는 마귀같은 어떤 실체가 붙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불행한 사람을 볼 때 그 안에 악귀가 들어앉은 것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에게는 인간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하였다.
인간의 불행은 인간 속에 잡기(雜氣)가 들어가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이 들어갈 자리에 악령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광기를 부리는 것은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말씀이 자리잡지 않고 잡귀가 자리잡고 요동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느님의 나라가 임해야할 자리에 악귀가 먼저 자리잡고 있으면 그놈을 내쫓지 않고서 어찌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이사업을 훼방하는 방해꾼이 바로 마귀의 세력이었다.
예수께서 구세사업을 시작하려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피정할 때에 처음부터 달려든 훼방꾼이 바로 마귀였다.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한마디로 이를 물리쳤다. 말 한마디로 물리치는 일, 이것은 주문을 외면 법석대던 무당푸닥거리와는 다르다.
오늘 회당에서 만난 마귀 들린 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마귀는 예수님의 일을 훼방하려고 소리소리 고함을 쳤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그 말은 신앙고백이 아니었다. 신앙고백의 가명을 쓰고 예수의 정체를 일찌감치 드러내어 예수께서 일도 하기 전에 반대자들로 하여금 그를 잡아가게 하려는 잔꾀였다. 예수께서는 입을 다물고 그 사람에게서 썩 나가거라는 한마디로 내쫒으셨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능력을 본 것이다. 그리고 어리벙벙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하느님의 권위를 드러내셨고, 마귀를 쫒아내심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신 것이다. 사도들이 교우들에게 가르치려고 한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세상어디에나 다 퍼져 나아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