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이면 바다가 있는 부산으로 간다. 해운대로 가는 도중 광한리에 생질이 살고 있기 때문에 별 준비 없이도 가곤 한다. 나만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생질의 아이들 셋도 데리고 간다. 조카며느리의 친척들도 경북과 서울에서 찾아간다. 소위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름 한철이면 조카며느리는 손님 치루기에 진땀을 뺀다.
생질은 직장 관계로 평일에도 해수욕장으로 못 가므로 내가 인솔자가 되어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광한리나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간다. 그것이 홀가분한 기분이 아니다. 항상 긴장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들 감독 때문에….
아무도 불의의 사고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평양에서의 일이다. 같은 신문사에 동생의 큰처남이며 나의 친구인 R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어느 여름날 점심시간에 R과 나는 대동강으로 수영을 갔다. R은 평양에서 났었지만 중학 시절부터 바다가 있는 우리 고장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수영을 잘 하는 줄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헤엄쳐 나가던 나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만 아찔해졌다. 기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R은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저걸 어쩌나?> 되돌아가서 구해낼 수 있을 만큼 나도 수영에는 능수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이 일시에 내 머릿속을 점령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배가 있어 불행을 면했다.
해수욕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언제나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서인지 쓸데없는 노파심 때문인지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한다.
여르철은 뭐니뭐니 해도 물을 따라 나서는 여행이 제일이다. 산 물론 좋다. 그러나 산은 녹음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어느 계곡이나 이빨이 시릴정도의 물이 콸콸 흘러내려야 한다.
물이 없는 산은 피서지로서도 물론 산 자체의 풍치로서도 떨어진다. 옛날의 산수화를 보아도 물이 있을 수 없는 곳으로 보이는 산에도 반드시 물이 있고 배가 있다. 하나의「선경」을 그린 것이겠으나 옛날 사람들도 산에 물이 있어야 격이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은 것이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산수화인 모양이다. 어릴 때에는 바다의 고마움을 알지 못했다. 집에서 불과 백m도 안 되는 곳에 바다가 있었다. 그러나 외지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다보니 오랫동안 바다를 그리워했다. 바다는 모두가 동해처럼 푸르고 밝고 깨끗한 것으로 알았다. 서해를 처음 본 것은 6ㆍ25가 나기 일 년 전 겸이포에 취재 여행을 가서였다. 그때 바다는 모두 동해와 같지 않다는 것을 실지로 알았고 황해라고 이름하게 된 연유도 알 만했다.
남해도 좋았다. 1ㆍ4후퇴 때 흥남을 떠난 LST가 닿은 곳은 거제도였고 도비라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오비의 바다에는 정을 붙이지 못했다. 바다의 패류에 또 다른 생물들이 동해의 것과 다르고 또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고 게다가 뱀이 많은 고장이어서 뱀들도 바다에 있을 것 같이 생각되어서였다. 동해에 면하고 있다는 고장은 내 고장 함경도만이 아니다. 강원도와 경상도도 동해에 면하고 있다. 강릉 출신의 H 시인은 바다는 동해가 제일이라고 한다. 경상도의 P 시인도 바다는 동해라고 한다. 그러한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우리 고장이 동해보다 더 좋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공해라는 것을 몰랐던 자연 그대로의 푸르고 맑고 깨끗한 호수의 바다 건너의 곶까지 20리는 족히 되는 백사장과 송림과 붉은 해당화를 눈 앞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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