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선조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선종 이틀 전 「엘리사벳」 이란 영명으로 대세를 받고 하느님 품에 안긴데 이어 이번에는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마리아)가 파란만장한 생을 끝내고 주님 곁으로 갔다.
조선왕조의 왕족 자신들이 서양학문의 하나로 이 땅에 최초로 소개했던 천주교를 그 후대들은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혹독히 박해했으나 또 다시 그 마지막 후손들은 선대(先代)의 죄를 보속이라도 하듯 속속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 성교회에게는 영광을 안겨주면서 한 시대 풍운의 역사의 마지막 잠을 조용히 마무리 짓고 있다.
천주교가 이 땅에 맨 처음 소개된 것은 17세기 초 광해군 때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 에 의해서 였다. 이수광은 여기서 당시 명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마테오 리치신부의 「천주실의」를 자세히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이수광은 바로 조선왕조 3대 태종(이방원) 의 6대손 이었던 것이다.
또 얼마 뒤 병자호란(1636년)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도 북경의 아담 샬 신부와 돈독한 우정을 맺으며 천주교 신앙에 큰 관심을 갖고 십자고상ㆍ교리서 등을 얻어왔으나 아깝게도 귀국 후 곧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실학자들이 서학으로서 천주교를 연구하다 18세기 말엽 이승훈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이 신앙으로 받아들여 마침내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백여 년간 신해ㆍ신유ㆍ기해ㆍ병인박해 등을 통해 1만 명 이상의 천주교 신자들을 죽인 조선왕조의 왕실에 복음이 최초로 전해진 것은 놀랍게도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가 일어나던 중의 일이었다.
정조의 서제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은언군의 아들 상계군의부인 신씨에게 용감한 여성신도 강완숙이 경희궁으로 몰래 들어가 교리를 가르치고 주문모 신부가 두 부인에게 「마리아」 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준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역시 원수를 사랑하셨다. 「척화비」 를 나라 곳곳에 세우고 강경한 소국정책을 펴며 8천명이상의 천주교신자를 무참히 살해(1866년 병인박해)한 「신앙의 원수」 흥선대원군의 부인을 하느님이 가택하실 줄이야!
아들「고종」이 즉위하기 전부터 유모 박말따의 가르침으로 교리를 배운 민부대 부인은 1896년 뭐텔 주교를 초청, 운현궁에서 「마리아」 라는 영명으로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후 민부인은 뮈텔 주교에게 종부성사를 받을 때 병환 중에 있는 대원군도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한다. 「죄 많은」 남편을 속죄시키고 그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뮈텔 주교의 심방을 젊잖게 거절한 대원군은 얼마안가 세상을 하직했다.
뮈텔 주교는 고종황제도 방문, 전교를 한 적이 있는데 뮈텔 주교의 일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순교자들의 비참한 정경을 이야기하자 황제는 벌떡 일어서면서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 고 힘차게 말했다. 』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대원군을 위해 그의 손자들은 대부분 보속의 길을 걸었다.
고종의 둘째아들 의친왕 이강이 1955년 「비오」를 세례명으로 영세를 한 후 약 보름 뒤 79세의 나이로 선종한데 이어 그 부인 김숙도 같은 해 서울 가희동성당에서 「마리아」로 세례를 받았다. 뒤를 이어 고종의 셋째아들 영친왕(垠) 이 1961년 동경에서 그곳에 머물러있던 프란치스코회 석종관 신부에 의해 「요셉」 이란 세례명으로 입교했다. 지난달 30일 선종한 부인 이방자여사는 한참 뒤인 1983년 「마리아」라는 영명으로 대세를 받았던 것이다. 영친왕은 1963년 귀국, 70년 종부성사까지 받고 73세의 일기로 선종했다. 장례식장에는 고 노기남 대주교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수백 명의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미사가 엄수됐다. 그리고 외아들 이구(玖)는 옛 러시아 황족의 후손인 신자「쥴리아」와 결혼했다.
한편 고종과 염상궁 사이에 태어난 황녀 이문용도 70년 전주에서 김환철 신부(전주교구장 직무대리) 에 의해 「마리아」 란 영명으로 세례를 받고 87년 87세의 일기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무리 지었다.
끝으로 지난 4월21일 조선왕조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하느님 품에 안김으로써 고종의 6자녀 중 어려서 병사한 완화군과 1926년 세상을 떠난 조선조 마지막 임금 순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조부 대원군의 죄를 보속한 셈이다.
조선왕조와 천주교의 이 같은 운명적 만남은 구세사적인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생생한 섭리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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