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유교철학의 전파와 그 해독성」이라는 책을 1976년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간하여 유교를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를 밝혔지만, 외국학자들은 「공자의 교를 제대로 현대사회에 이룩한 유일한 곳」을 북한이라고 말한다.
김일성은 정치개혁을 하면서 「여성해방」이나 「남녀평등」 같은 이념을 내세워 봉건적 위계질서를 붕괴하고 가족의 기능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하는지 모르나 정치ㆍ경제ㆍ사회ㆍ국방ㆍ문화 등 모든 면에서 외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교유사상에 의존하여 전통적인 유교사상을 남한보다 더 지속시킨 결과를 가져온 것 같이 되었다.
스스로 「어버이 수령동지」가 되어 가부장제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그에게 북한여성들은 경모(敬慕)의 정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는 새해의 노래」의 일부를 보면 『아, 백번을 다시 태어나도/어버이 수령님 한품에 안기고/한번을 다시 태어나도/수령님 한분만을 모시려는/우리 인민의 간절한 마음』등인데 40년 이상을 외부와 차단되어 사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과 비교할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통령이란 선거에 의해 뽑혀지지만 「어버이」란 말의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으니 그는 언제까지나 어버이이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어버이제도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없앴고,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하루아침에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국가인데 「주체사상」 을 창조적이라고 하니까, 제3자에게는 모순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기능에 관해서라면 어머니가 직장노동을 하고 아버지는 특별한 오락시설을 즐길 수 없어서인지 집에 일찍 들어와 자녀교육을 맡으며 「귀속지위 부여기능」 도 존재하므로 자식과 부모는 서로 의존하며 사는 관계였다.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뜻은 가산이 있으면 물려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안내원 없이 필자가 불쑥 방문했던 가정도 다행히 할머니가 계셨기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주인은 교수이고 어머니는 기계대학 노어교원이라 저녁강의를 나갔는데 국민학교 4학년 막내아들이 숙제를 하고 있었다. 교수이면서 박사인 「박사교수」 라면 북한에서는 굉장한 계층이며 그 집의 경우 한국의 여느 가정과 가족분위기는 같았다. 국민학교 4학년이 학교에서 배우는 학과목 순위를 국어, 영어, 산수의 서열로 설명했고 한 가지 다른 과목이 바른생활이나 도덕 대신 「아버지 원수님의 어린시절」 이었다. 일기노트와 종합장은 남한 것보다 종이 질만 못하지 모양은 꼭 같았다.
북한주민은 남한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남한에서는 이미 북한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곳도 사람사는 곳인데 학교에서 배워온 것보다는 잘살 것이라고 믿는 젊은이가 많다.
그런데 가서본 북한은 자립경제 체제로 수출입을 하지 않아 너무나 어렵게 살면서 세계최고의 건물은 평양에다 지으려는 듯 인민을 혹사하고 있었다. 가족방문을 다녀온 사람들의 공통된 소감은 처음에는 분노하고 그다음엔 동정하고 마지막엔 입을 다문다.
천주교인들은 으레 반공주의자라고 인정되기 때문에 비유까지 들어가며 북한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꼭 확인하겠다는 사람에게 들려줄 말은 우리가 돈 좀 있다고 가난한 사촌 비웃는 것처럼 들릴까봐 말하기가 거북스럽다는 것이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누가 다리가 아픈 사람이 있다고, 상처가 굉장하다고 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조심이 없어서 다쳤다느니 까불다가 그랬다느니 별소리를 다했다. 그런데 직접 가서 보니까 얼마나 상처가 심하던지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다가 그 상처에 병균은 없는지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이 들여다 볼 때 전염될 수도 있는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외국 특파원이나 이웃나라의 국민들은 환자를 비웃을 수 있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므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또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떠나서라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연결되어 있다.
그 환자는 생활필수품이나 입에 들어갈 식량이 부족한 즉 다리상처가 깊다는 정도만 아니다. 하느님을 부정하고 김일성을 그 자리에 끌어 올렸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심장인들 건강하랴.
비유는 이쯤서 끝내고 신축된 북한교회에서 필요한 물건으로 생각을 돌려보자. 개신교인 봉수교회는 버스2대 자동차2대 및 프린트기계가 필요하다고 했고 그의 있어야 할 기재가 장충성당과 대동소이했다. 성당은 건축비 30만원 가운데 신자들의 기부금이 20만원(교원 한 달 봉급80원) 이었고 무이자로 대부받은 10만원의 빛이 있으며 자동차, 버스, 승용차가 필요한데 교우들을 태워야 함은 물론 지방공소를 만들면 특히 수송이 요구 된다고 했다. 현재 남포등지에서 교우나 연고자들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교우들을 도와주는 협회가 생기면 화물차도 필요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
북한 교회의 현황을 외부에 알리고 외부의 소식이나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서 TV수상기와 녹화기 촬영기 등이 필요하며 교우들과의 국제친선을 위해서 국ㆍ영문 타자기, 복사기, 프린트할 재료가 필요하다고 성당 측에서 이야기했다.
세계성체대회 때 여의도에서 남북신자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성요셉 업무관계담당에게 로스엔젤리스 성 아그네스 본당의 총회장인 노요셉 부부는 성체대회에 참석하는 자기본당 신자들을 평양으로 모실 것임을 이야기했다. 북경서 우연히 같이 들어가게 된 요셉 부부와의 만남은 우연으로 보이는 하느님의 계획 같았다.
성당의 앞쪽 오른편 벽에는 아기예수를 안은 커다란 요셉성화가 있었고 왼편에는 그냥 성모그림이 있었다. 동구라파 와달리 중국의 성당들에도 동고상이 없더니 북한에도 아직 그림들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하느님에게 빌어보았자 먹을 음식이나 살 집을 얻을 수 없지요. 김일성 수상의 지도 밑에서 열심히 일한다면 식량ㆍ의복ㆍ주택 등의 걱정은 조금도 없어요』 하는 북한에서의 성당건설은 그자체로서 기적이었다.
『신부님을 모색하는 중입니다. 미국서 와야지요』 하는 성당회장의 음성을 들을 때 보초 몰래 크레믈린 궁전 벽에 쑤셔 넣은 평화의 성모메달과 천지못에 가라앉아 녹쓸었을 성패가 반짝이는 빛을 내며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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