뵐은 이차대전중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몸소 피비린내 나는 격전에 참전한바 있었고 종전(終戰)이 될무렵에는 포로가 되어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연옥(練獄)의 시련을 치루어낸바 있었다. 뵐은 전쟁이 더럽고 처참하고 무의미 하다는 것을 잘알고 있기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을 극도로 증오한다. 따라서「전쟁은 티푸스병과 같다」고 말한 생떽쥐베리와「본래의 신을 제처놓고 새로운 신으로 등장한 죽음은 배불러가고만 있다」고 말한 볼프강 볼ㆍ헤르트 와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뵐은 다른 수천만 인류와 더불어 체험한 전쟁을 사실적인 수법으로 해부하면서 모든 전쟁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쌓아올린 인류의 문화재와 귀중한 인간생명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거침없이 고발하고 있다. 전쟁터에서의 체험은 뵐로 하여금 전쟁을 증오하는 철저한 휴매니스트 내지 반전주의자(反戰主義者)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죽음의 극한상황(極限狀況)에서 방황하다 난파(難破)된 평범하고 가엾은 인간들을 옹호했다. 그의 처녀작『휴가병열차』는 바로 이 문제를 테마로 다루고 있다.
이미 전쟁중 포로생활을 할 때 작품의 구상(構想)은 이루어졌으며 완성은 자유의 몸이 된 이후가 된다. (1949년에 출판)이 작품은 전후문학(戰後文學)의 최대 걸작으로 인정받았으며 뵐의 작품중 가장 구성(構成)이 잘 짜이고, 강력한 단편적인 호흡이 아주 섬세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정평(定評)을 받고있다. 문체는 다른작품을 보다 훨씬 간결하다.
휴가병을 싣고 다시 지옥의 전선으로 향하는 군용열차가 작품의 첫무대로 부각된다. 주인공은 안드레아-그가 목적지에 도착할려면 아직도 몇 일이 걸린다. 『죽고 싶지않다. 그러나 곧 죽게되리라는 것이 몸서리친다』라고 절규(絶叫)하면서 술을 퍼마시며, 카드놀이를 하는 병사들, 다른 한편에서는『곧 곧 곧은 언제인가? 곧이란 일초안에도 있을수 있고, 일년안에도 있을수 있다. 곧은 미래를 압축시킨다. 확실한 것은 결코 없다. 절대적인 불확실성만이 있을뿐이다. 곧이란 죽음이다』라는 불안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생의 무의미성(無意味性)을 절감하는 병사들, 이들에게 안겨질 유일한 명예란 영웅적인 전사(戰死)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와같은 극한상황이 극도로 압축된 휴가병 열차에 자기의 운명을 맡긴채, 안드레아도「죽음」과「곧」이라는 절박 의식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아(自我)를 상실하고 만다. 천주님마저 원망스럽게 보인다.
죽음의 직전 영혼의 구원이라는 단어는 관심 이하의 것이 되어버렸다. 오직 남는 것은 지옥전선에 투입되기 이전 향락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휴가병 열차는 전선(戰線)근처에 있는 폴란드의 어느 도시에서 잠시 정차를 한다. 병사들의 마지막 향락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안드레아는 이곳에서 올리아나라는 창녀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지난날의 올리아나는 묵주신공을 하루도 궐하지않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다 음악을 전공하는 여대생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창녀와 간첩으로 전락된 것이다. 그러나 두 남녀가 만나는 순간부터 모든 전쟁의 마스크를 사정없이 떼어버린다. 전전(戰前)의 안드레아와 올리아나로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피아노 건반에 옮긴다. 일찍이 피아니스트가 될려고 했던 안드레아는 죽음의 공포를, 여류음악가가 될려고 했던 올리아나는 창녀로서의 수치감과 간첩으로서의 비인간적인 의무를 망각하게 된다. 양(兩)자 모두 육체적 욕망을 초극(超克)한채 초(超)현실적이고 아카페적인 사랑에 도취된다. 고전음악을 통해 승화된 고도의 정신적 사랑인 것이다. 여기서 영혼은 전쟁이라는 현실성을 제압한다. 올리아나는 안드레아와 함께 지옥의 현실성을 벗어나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는 벽지로 탈출할 것을 강구한다. 그러나 그들을 운반해주기로 되어있는 자동차는 빨지산에 의해 산산조각 파괴되어 버린다. 안드레아가 죽음을 예감했던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죽음의 시점(時点)에서 안드레아는 원래의 가톨릭 신자의 모습으로 회귀(回歸)한다. 전쟁 이전의 생활, 군인생활, 휴가병 열차, 올리아나와의 사랑, 빨지산의 공격 등-이런 모든 현상들을 영원한 변증법적 과정의 일부분으로서 인식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의지속에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볼록렌즈의 초점에 비추어진 죽음의 공포는 순수한 신앙의 확실성 초현실적인 음악, 육욕(肉慾)을 초월한 맹목적인 사랑을 통해서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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