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것은 인류학적으로는 유효한 해결책이지만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②가령 이대로 따르면 세례 받지 않은 자의 원의와 세례 받은 크리스찬의 원의가 구별되지 않는다.③구체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회원은 되지 않지만 선의의 원의가 있을 수 있다. 즉 양심 속에서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의 지도를 수락할 용의를 배제하지 않는 명시적 또는 암시적 원의가 있을 수 있다. 한 마디로「참 교회」를 찾는 이가 많다 다만 그들은 이 참 교회가 숨겨져 있다고 여긴다.
④여기에 묘사된「원의」의 개념에는 개별적인 비가톨릭자와 교회와의 관계만 다루고 있다. 그들의 교회 또는 단체는 하느님의 구원 요소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 밖에도 유효한 세례가 있고 이 세례는 교회와 특정의 연관을 맺게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옳지 않다. 그러므로「원의」의 교리는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제2차「바티깐」공의회 교회헌장에서 이루어졌다.
◆교회에 속한 자 또는 연관된 자
①초세기부터 특히 아우구스띠노 이래 교회에 속하는 층이 두 가지가 있다고 이해되어 왔다. 하나는 신자들의 可見的 단체이다. 여기서 온전한 회원이 되는 조건은 완전하게 그리고 명확히 묘사되지 않았다. 또 하나는 내적 부가견적 사랑(CARITAS)이다. 이것은(회원으로서의) 외적 행동에 의하여 증명되고 표시된다. 가견적 교회 안에 있어야만 사랑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랑(성신) 없이도 可見的 교회 안에 있을 수는 있다.
②아우구스띠노의 신비체 교리에 영향을 받은 성 토마스는 교회를 주로 그 내적 면에서 보았다.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교회의 회원이 된다. 그는 이 일치를 교회 조직에의 가견적 참여에 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총에의 참여에 두었다. 그러기에 성 토마스에 있어서는 교회의 부가견적 면이 가견적 면보다 우세하다. 여기서 교회의 가견적 회원이 아니라도 의화 은총을 얻는 길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성 토마스 I ㆍII 89 ㆍa6c)
③예정된 자들의 교회, 숨은 교회라는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서「뜨리덴띠노」공의회 이후에는 교회의 가견적이며 제도적인 요소가 매우 강조됐다. 가톨릭과 비가톨릭 크리스찬을 분명히 구별하기 위해 벨라르미노는 교회를『합법적 목자의 권위 아래 특히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로마 교황의 권위 아래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성사에 참여하는 결합으로 일치된 자들의 단체』라고 정의했다.
물론 벨라르미노는 은총이라는 내적이며 결정적 요소를 완전히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견적 회원 자격을 규정하는 데 전념하고 그리스도와의 내적 일치의 표지라는 가치에는 주의를 너무 기울이지 않았다. 교회의 가견적인 것을 부가견적인 것에서부터 너무 강하게 격리시킨 결과 벨라르미노는 가견적인 것을 국가와 같은 수준의 것으로 여겼다.
④벨라르미노의 주장은 제1차「바티깐」공의회의 준비 과정에서 다시 나타났다. 본인의 탓이 없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모르더라도 구원의 길이 열려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교회의 중개없이는 구원될수 없다. 여기에는 갈려진단체에 대하여는 긍정적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공의회의 통의 과정에서 교회의 참 회원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은총에 의하여 의화된 자는『교회에 더욱 완전히 속한 자라고 말할 수 있으니 그들은 교회의 몸의 지체일 뿐 아니라 성신에 의하여 생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교회 밖에서 은총의 지위에 있는 자는 교회의「영혼」에 속한 자 또는 벨라르미노의 표현대로 「원의」로써 교회에 속한 자라고 했다. 그런데 크로이드겐은 본인들의 의지에 반하여 방해를 받아 교회의 외적 9정식)회원이 되지 못하고 있는 자는「영(SPIRITU)으로」교회에 속한다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