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순간이었지만 나는 남편의 몸에 감겨 있는 그분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거룩한 광환(光環)이 되어 술에 취해 몽롱해 있는 남편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 순간의 감동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일 순간의 섬광에 지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것은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부터 그분의 뜻이 내 가슴에 출렁출렁 고여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남편은 마치 그분의 사랑의 뜻을 나에게 전하고자 내 눈 앞에 서 있는 그분의 현신(顯身)인 것만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무한한 감사를 그분에게 바쳤습니다.
내 눈을 어둡게 가리고 있던 고깃비늘 같은 것이 후룩후룩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내 가슴 속에는 출렁출렁 사랑이 넘쳐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아 나는 드디어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에 힘입어 그분의 뜻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분의 뜻은 너무도 길고 으슥한 곳에까지 감추어져 있어서 여지껏 나는 그것은 편린조차 깨닫지를 못한 것이 부끄러울 뿐이었어요.
천국이 마음 속에 있다는 진리!
그것을 터득하려고 나는 20여년 동안 피나는 방황을 일삼아왔던 것이라 생각되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도 또한 그분의 뜻이었다고 일깨워지더군요.
내가 상식적인 평안 속에서 삶에 대한 아무런 번뇌 없이 살아왔다면 결코 오늘 이 순간의 터득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슴에 사랑을 담게 되니 내 자신은 일찌기 그런 화평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우선 남편이 역신(疫神)처럼 싫어하는 돈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끔 조처했어요.
언젠가 남편은 이런 소리를 하더군요.『요즘에는 당신이 큰 소리로 여닫는 캐비넷 소리를 듣지 않으니 살 것 같소. 또 장부를 적으려고 만년필을 꺼내는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군…』
나는 낯을 붉히며 계면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남편을 괴롭히고 싶어서 여보란 듯이 금고가 들어 있는 캐비넷 문을 여닫으면서 그가 필요한 돈을 타갈 때마다 만년필을 뻗쳐 들고 액수를 기입하고 하던 일련의 행위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곤 해요.
그럴 때마다 남편이 느껴야 했던 절망감에 이해가 갑니다.
내 얼굴에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화색이 돌아오니 남편도 서서히 술과 멀어져 갔습니다.
역시 모든 근원적인 책임은 내게 있었구나 하는 자책지심으로 몸을 떨 때도 있었죠.
남편처럼 현대 문명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는 인간의 기계화에 육체적인 공포증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는 현대식으로 개조돼 가는 선물을 싫어합니다.
나는 그의 뜻대로 덕소에다 그의 거주지를 옮기기로 했어요.
지금 난 남편을 이해하면서 그의 높은 정신 차원까지 오를 수 있도록 발돋음하는 매일이 그저 감사할 뿐이랍니다.
기나긴 인고의 터널을 빠져나오듯 선경이 말을 매자 택시는<어서 오십시요. 여기서부터는 경기도입니다>하고 쓰여 있는 지점까지 다달아 있었다. 승애는 뿌듯이 치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선경의 손을 두 손으로 거머잡고는 『사모님 저도 사모님을 따르겠어요』거의 외치다시피 말했다. 선경은 승애의 손을 맞잡아 주었다.『승애씨! 사랑을 뛰어넘는 진리가 다시 있을까요? 다만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어떻게 지켜가느냐가 문제일 뿐이에요. 승애씨가 윤홍노씨를 사랑하고 있는 한 그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다고 봐요. 다만 어떻게 참으면서 키워가는가에 승애씨의 지혜와 끈기를 총동원해야 할 거예요』『알았습니다. 사모님! 저도 이제는 결심할 때가 왔고 아니 벌써 결심한 걸요』
두 여인은 밝은 목소리로 웃었다.『다만 무척 겁이 나요. 어려운 관문이 수없이 제 앞에 버티고 있을 것만 같고 아마 그럴 거에요. 전 우선 제 자신의 훈련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사모님도 아시겠지만 흥노씬 인생의 모든 점에 아직도 흥미와 호기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권세연 선생님과 근본적으로 다른 면이 바로 그 점이겠는데요. 사모님! 사모님은 그래도 여자 문제로 속을 썩혀 보신 적은 없으셨죠?』선경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일순 겁 먹은 눈망울로 승애를 쳐다본다. 여자 문제는 확실히 선경이가 체험하지 못한 또 다른 그리고 좀 더 복잡한 난관임에 틀림없다. 『사모님 걱정 마세요 전 자신이 있어요. 사모님이 견디어 내신 일인데 저라고 못 견딜 일도 아니잖아요? 전 흥노씨가 좋아하는 대상까지 사랑해 보도록 노력하겠어요』승애의 눈에는 만만찮은 결의가 번뜩인다.『사모님 결심하고 나니 마음 속이 후련해요. 역시 천국은 마음 속에 있는 거로군요』승애는 명랑한 새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선경의 심정은 개운치가 않았다. 승애 앞길의 가시덤불이 어느새 자신의 살 속에 마구 찔려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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