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인가, 나병환자인가. 1967년 개신교와 성서 공동번역 작업을 할 때에 의견이 대립되어 토론을 벌이다가 이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귀에 문둥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공동번역에는 나병환자로 합의를 보았었다. 그런데 우리말 어법상 나병이란 말은 요양원과 함께 쓸 때와 병원에서 환자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고 표준어는 어디까지나 문둥병자이며, 특히 글에는「문둥」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우리말에는 한자로 대용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고, 순우리말을 써야 할 때가있다. 가령 「소경 제 닭 잡아먹기」 라는 격언은 「맹인 제 닭 잡아먹기」 로 하면 격언의 꼴을 잃게 되며「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라는 성경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소경」 「병신」 「문둥이」 등의 말이 사회적으로 경멸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말자체가 그렇다기보다는 병의 상태자체가 일종의 욕하는 말로 쓰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불행한 분들에게는 도대체가 이런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성서에서도 이 말이 쓰여 질 때는 그러한 불행을 당한 사람의 극한상황을 묘사하면서 사회에서 경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일차적인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모든 현세의 불행은 죄악의 불행에 비하면 손쉬운 구제대상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는 기적이야기이다. 문둥병자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난치병(難治病), 처형병(天刑病)으로 불리는 만성 전염병이다. 1871년에야 그 병균이 한센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발견되어 치유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한센씨 병」이란 학명으로 불리는 병이다. 그리스어로「레프라」(Lepra) 라고불리는 이 병은 옛날에는 전염성이 있는 난치의 피부병을 통칭하였고 이것을 속칭 문둥병이라고 불렀다.
전염성이 큰 만큼 그리고 고치기가 어려운 만큼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이었고 예수당시에도 이 병의 치유방법은 없었고 이 병자들을 격리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국가적으로나 어떤 단체에서 격리수용소 같은 것을 제도적으로 마련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법적으로 규제되어있는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들이 부정한사람으로 선언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런 사람이 사람들 있는 곳에 갈 때는 스스로 『부정한 사람입니다』 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었다(레위 13, 45).
문둥병은 하느님의 힘이 개입되어 기적적으로 낫는 병으로 인식되어 있었다(열왕하 5, 8이하). 그리고 문둥병 이란 이름으로 딱지불은 사람도 치유 가능한 경우와 치유 불가능한 경우가 있었다. 어느 경우든 종교예식에 참석할 수 없었고 이 판정을 내리는 사람은 제관이었다. 병이 나았을 경우에는 제관에게 가서 보이고 정해진 율법대로 정결 예식을 행하여야 했다(레위 14, 2이하).
공동체에서 제외되고 사람들의 사갈시를 당하는 문둥병자 한사람이 예수를 찾아 왔다. 그의 용기도 용기려니와 그는 예수의 기적적인 치유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원하기만 하면 저를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측은한 마음과 대견스러운 정이 동시에 움직여 그에게 손을 얹으며 『깨끗하게 되어라』 라는 한 말씀으로 그를 고쳐주셨다.
복음사가들은 이 기사를 쓰면서 세례를 받으러오는 죄인들을 생각하였다. 문둥병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하였다면 죄는 얼마나 더 개인과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고 치유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깨끗하게 치유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고쳐진 문둥병자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도 문둥병자이다. 모세법이 정하는 대로(레위13~14장) 제관에게 보이고 평상인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그들의 법이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의학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미감아들이 아직도 거리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사회에 비하면 훨씬 깨끗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치유된 사람에게 합법성을 채우라고 돌려보내셨고 그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하셨다.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일을 모든 사람에게 선전하였다.
이 대목은 치유된 사람이 예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와 『떠나가서… 선전하였다』라는 표현은 마르꼬의 교우들에게 대한 교리교육적인 기술 용어이다.
함구를 명하신 것은 예수의 활동이 아직은 함축적으로 행하여지는 메시아계획의 때를 말하는 것이고 떠나가서 선전하였다는 표현은 세례 받은 사람들이 사방에 흩어져 전교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결과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수께로 모여든 것이다.
마르꼬가 표현하려는 메시아계획은 학자들이 메시아의 비밀이라고 하는 말로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하느님이 아들로서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께 순종하며 「고통 받는 종」 의 모습으로ㆍ일하신다는 뜻이다.
일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사람들의 인기가 충천할 때 그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언제나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을 묵상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대신 내 이름을 빛내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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