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선 남들 앞에서 큰소리 한 번 못 치고 비실비실 산골로 피해 살다 죽으면 묘비 하나 제대로 세울 수 없었던 선조들.「천주학쟁이」란 단 한 가지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죄목(?) 때문에 그날그날 살아가면 다행이고「바람 맞이에 강 언덕에 바위 틈에 토굴 속에 걸인 모양으로 혹은 노동자로 혹은 장사치로 혹은 병신 구실을 하며」(오기선 著「사제생활 반생기」에서」 포졸이 습격해 온다는 소문에 까무러치듯 男負女戴하여 생사의 피신길에 나서야 했던 가련한 양떼들. 편히 맞을 수 있다면 큰 다행이었다.
잡혀가 모진 고문에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고… 그러나 병들어 죽고 굶어 죽고 참수 당해 들판에 버려지면 야음을 이용해 시체나마 거둘 수 있었다면 또 다행이었으니 어디 대고 버젓이 비석인들 세울 수 있단 말인가.
묘가 아닌 척 분봉도 없이 한 구덩이에 줄줄이 시체를 묻으면서도 후손에에게 죽음을 알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상정(常情).
어쩔 수 없이 익힌 옹기 굽는 재주가 동원되어 묘비 대신 만든 것이 이 사발 묘표(墓標)이다.
죽은 이의 성명과 죽은 날짜를 적은 사기 사발을 시체와 함께 무덤 지석(誌石)을 대신했던 것이다.
이 방법이 천주교 신자들만의 독특한 관습은 아니지만 묘비도 세울 수 없는 신자들이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방법이다.
사진에서 보는 복녀 허막달레나와 그 장녀 이마라아의 사발 묘표는 1938년 지금의 서울 봉천동에서「언구비」(잠실) 묘지로 이장하면서 다시 써 넣은 것을 70년 재이장시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발견된 것들은 6ㆍ25사변 때 없어지고 이때 나온 10여개만이 남아 처절했던 순교자의 죽음을 다시 느끼게 한다.
이 유물은 표시도 없는 순교자들의 묘가 이 산하 어딘가에 많이 흩어져 있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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