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마술라마? 너 어째 마술가마 같은 소리만 하는구나』
이런! 하고 나는 얼른 회장님을 살펴봤다. 도대체 본당의 회장님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사실 나는 마술가마에 대해서 좀 더 지도 편달을 해 주길 바랬으며 그게 회장님의 취할 도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존경이라는 걸 무시하고 싶어졌다.
『왜요? 교회 일 아녀요?』
『자식, 공박하고 싶은가 보군. 요즘 같이 비싼 목재를 네 맘대로 쓱쓱 잘라서 겨우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말야』
나는 마술가마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줄 알았다. 얼른 미완품을 살펴봤다.
어딘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회장님이 먼저 발견했다는 당황함.
그러나 내 눈에 비치는 건 아직 미완된 상태 그것뿐이었다. 도무지 잘못 된 게 없었다.
양쪽에서 떼메게 되는 멜대, 네 개의 각주, 각도기를 채운 전면과 후면, 그리고 윗부분.
『회장님 지적해 보십쇼. 잘못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봅니다』
회장님의 입가가 실쭉해진다.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넌 꽤 고집쟁이군. 그럴 수밖에 없지. 목재도 하느님이 그냥 주시는 줄로 알 테니까』
나는 비로소 알아챘다. 동시에 대단한 실망이 떠올랐다. 교회에는 안 나가도 김군처럼 매사에 빈틈없는 사람이 어쩌고 하는 그날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 회장님은 자기 딸의 생일 음식을 일칸에 가져다 놓고 우리더러 먹으라고 했다. 죄다 닭고기 튀김이었다.
직공들은 몹시 허기져 있었으므로 먹기에 바빴다. 나는 남보다 한 개라도 더 먹기 위해 분주히 입을 움찔거렸다.
김이 웃고 있었다. 자식은 튀김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점잖만 빼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자식은 회장님 곁에 바짝 붙어앉아 얘기를 늘어놓았다. 회장님은 자식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끄덕거렸다.
『고마워 김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가구사업을 해 먹을까 싶으잖군.』
자식은 더욱 쫑알댔다.
『주인님, 이럴 때일수록 달리 경영 방침을 써야 하는 겁니다. 가령 말입니다. 옷장을 하나 만든다 칩시다. 각구목이 수십 사이나 들지 않습니까? 이것을 반각구목으로 바꿔버리면 우선 재료에서 이익이 나오는 겁니다. 지금 도시에서는 이런 경영 방침을 쓰고 있습니다』
회장님과 김군의 얘기에 탄복해마지 않았다.
『맞았어, 바로 그거로군. 이봐 김군. 다른 가구업자들에겐 일체 그런 얘길 하지마. 읍내에서는 모두들 깝깝하니까 알겠지?』
김군은 표창이라도 받고 싶은 모양이다. 그리고는 물었다.『주인님? 저어 따님의 나이가 올해 몇 살이죠? 저는 올해 스물셋인데요』
회장님은 갑자기 근엄해졌다. 그리고는『내 딸도 스물 셋이야』
김군은 재빨리
『저와 동갑이군요. 동갑끼리 만나면 잘 산다고 하더니만…』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자식이 몹시 밉살스러웠다. 튀김도 다 먹어치우고 있었다.
『김군, 그런 소리는 구약시대의 유행어야. 결혼은 근소가 있어야 좋아』
회장님이 나를 쳐다봤다.
『토마스는 몇 살이지?』
나는 김군에게 들으란 듯이 크게 대답했다.
『스물넷입니다』
『닭튀김 맛있어?』
회장님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다.
『그럼요. 누구의 생일 음식인데 맛이 없겠어요』
회장님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항상 사업 같은 걸 연구할 줄 알아야 돼. 김군은 토마스보다 한 살 아래긴 해도 토마스보다 훨씬 앞섰어』
김군이 씨익 웃고 있다. 자못 만족스럽다는 상판대기였다.
나는 자식을 째려보았다. 강한 상대 의식에 사로잡혔다.
나는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회장님, 저는 생활 모토가 없잖아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사는 게 가장 훌륭한 사업을 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회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교회에는 안 나가도 김군처럼 매사에 빈 틈이 없으면 성공하는 거야』
김군이 나를 빠꼼 쳐다본다. 그리고는『박형, 진리라는 건 교회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구요』
나는 못 들은 척해 버렸다. 회장님은 김군에게 나직히 뭔가를 귀뜸해 주고 있었다.
김군은 주인에게서
『토마스는 말야, 너무 종교관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잘 모르고 있다. 김군이 큰일 하는 셈 치고 잘 좀 깨우쳐줘』이런 귀뜸을 받아들었다.
나는 그날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리고는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본당의 일이라면 무엇을 해도 즐겁고 어떤 것이라도 아깝지 않았던 나의 마음이 이 한 순간에 커다란 회오리를 일으켰다.
애당초 요한나 수녀님은 마술가마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선물로서 지급하려 했다.
유치원 기금이 넉넉치 않다는 시실을 잘 알고 있는 회장님은 기꺼이 회사서 내게 이 일을 맡겼으나 근본에 가서 나는 상당량의 목재를 축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완성 단계까지는 상당한 목재와 시간이 소모되어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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