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우들은 곧 제대를 가설하는 일에 착수했으니 이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공사는 아닙니다. 널판대기 하나를 벽에다 붙이고 흰 종이로 제대 위와 앞을 바르면 다 되니까요』
1887년 9월에 바지 저고리 상투 차림으로 변장하고 숨어들어온 한 불란서 신부가 고향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선교사들은「허가 난 상품이 아닌 밀수품처럼」들어와 낮에는 발을 펴기도 힘든 좁은 방에서 몸을 숨기다 밤이 되어야 상복 차림 등으로 신자들을 찾아 나서고 신자들은 그들대로 이눈 저눈 피해 신부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혹은 10년 만에 신부를 만나 성사를 보는 기쁨도, 눈보라길을 80여리나 업혀와 생전에 원하던 종부성사를 받는 병든 노파의 희열도 오손도손 모여 미사를 봉헌할 때 그 절정을 이룬다.
그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제대가 흔히 구할 수 있는 널판대기일 수도 있고 뒤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신자들의 꾸밀 수 있는 최상의 제대였으리라.
「제대 판목」(祭臺板木)이란 표찰이 절두산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는 길이 150㎝ 넓이 35㎝ 두께 5㎝의 이 널판지는 바로 이런 사연을 지닌 유물이다.
경기도 포천군 포천면 설운리 522번지에 있는 1849년 2월 17일에 지은 교우 집에서 공소 제대로 약 1백 년 동안 써온 것으로 4대 교구장 베르뇌ㆍ장 주교 이후 역대 주교와 신부들이 이 널판지를 제대로 미사를 봉헌했다. 1세기 동안 이 위를 거쳐한 무수한 신부들의 손길에 패인 골마다한국 교회의 눈물과 한숨이 서린 듯 지난날 처절했던 순교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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