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버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잘못은 내게 있다고 생각되어서였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을 제게 시켜주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기 들게 되는 모든 재료비는 저의 월급에서 삭감시켜 주십시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철썩 하고 뺨에 불이 번쩍 일었다.
『이 새끼가』
하는 소리도 그 순간 들렸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회장님은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토마스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하다니 당장 나가라!』
나는 똑바로 회장님을 쳐다보았다. 야속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아니 억울했다. 교회를 대표하는 회장님에게서 교회 일로 인해 뺨을 얻어맞고 내쫓긴다는 이 비참.
나는 오열 같은 걸 토하고 싶었다. 후끈하고 응어리가 치밀어올랐다. 나는 나의 연장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회장님은 더 이상 소리치지는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때 칸막이의 문짝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는 연장 전부를 망태기에 집어넣고 끈을 졸라맸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내에 자욱한 연기, 타다가 꺼진 대패 검불, 물에 흉탁해진 재 부스러기와 나무 토막들.
그녀는 대충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소리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어머나!』
나는 누가 들어온 것쯤은 관심 밖이었으므로 그녀의 난데없는 출현을 보자 손발이 딱 정지되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꾸벅하고 절을 했다.
『아, 젬마씨 오셨군요』
나의 심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나는 이 한마디에 일축시켜 그녀에게 어필시켰는지도 몰랐다.
회장님은 자기 심중 안에 안도의 숨을 내불었다. 이 위태로운 순간이 잘 무마되도록 무척이나 바랬던 것이다.
그녀는 집에 들어서자 부친의 호통을 들었으며 곧장 토마스의 일칸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얘야, 오늘은 왠 일로 일찍 퇴근했니?』
그녀는 군청 타이피스트로 근무하고 있었다.
『참 아버님도. 오늘은 토요일 아녀요』
그녀는 아버지를 책망하고 싶어졌다.
본당 회장 직분을 맡고 있는 부친이 토마스 앞에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으면 큰일이었다. 십중팔구는 그러리라 여겨졌다.
그녀는 토마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때문에 토마스의 잘못 같은 건 개의치 않았다.
나는 연장 망태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재빨리 토마스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애원했다.
『토마스씨 무슨 일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봐서라도 아버지를 이해해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사뭇 애처럽게 들렸다.
회장님은 딸이 이렇게 나오길 무척 바랬다. 토마스가 딸의 사정 얘기에 마음을 돌이켜줬으면 싶었다.
『아버지는 토마스가 무얼 잘못했다 그러세요. 토마스처럼 성실한 사람은 맘에 든다고 항상 그러셨잖아요』회장님은 그제야 느긋하게 말했다. 『내가 너무 화를 낸 거야. 얘야 네가 대신 토마스한테 말 좀 해라. 마술가마를 만든다고 공장의 재목들을 몽땅 잘라버릴 모양이다. 확실히 마술가마인가 좀 따져봐』
그녀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회장님은 딸의 응답을 듣자 일칸에서 걸어나갔다.
칸막이의 문이 탕 닫혔다. 문짝에 당겨 매인 자전거 튜브가 응축되어 떨린다.
일칸 안은 단둘이가 되었다. 부친이 나가자 그녀는 나의 손에서 연장 망태기를 받아 가졌다.
무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패 다이 위에 올려 놓는다.
이로써 견제할 수 없었던 격한 감정들이 그녀로 인해서 사르르 풀려버렸다. 나는 가벼운 흥분조차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모습 앞에서 무엇이 부족했겠는가.
나는 당황해졌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여름에 사제관의 장미꽃을 한 아름 꺾어다가 그녀 방의 창가에 살짝 놓아준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샐쭉해진 그녀를 이 순간에는 마주 대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갑자기 신중해지는 나를 보자 얼굴을 붉혔다.
옆칸에서는 김군의 화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자식은 괜스레 견습공 명구를 이새끼 저새끼하고 왈긴다. 못질하는 망치 소리도 예전 같지가 않다.
흡사 함마로 두들기는 것 같다. 자식은 분명 못에다가 나를 연상시켜 악을 쓰는지도 몰랐다.
나는 옆칸의 김군 따위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는 지금 장미꽃의 추억을 되살렸으며 그녀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싶어졌다.
그녀는 망치 소리가 귀에 따가운지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다. 망치 소리는 이따금씩 났다. 이를테면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던 걸 훼방놓고 있었다.
그녀는 토마스에게 말을 걸기가 무척 힘이 든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토마스씨, 마술가마를 만든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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