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네온 게 매우 고마웠다.
『네, 선빵 유치원에서 주문해온 겁니다』
나는 여기에 몇 마디 덧붙이고 싶었다. 유치원 수녀님이 그려준 원본엔 미숙한 점이 너무 많았다는 것. 그래서 재수정하여 아주 훌륭한 마술가마를 만들려 한다는 것.
『마술가만 그냥 만들어 주는 거죠?』
『수녀님께서 돈을 주려 했지만 회장님이 받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술가마는 뭣 하는데 쓰는건가요?』나는 그녀가 모르고 묻는다고 여겼다『유치원 꼬마들이 극장에서 타고 다닐 거래요』
그녀는 우스웠다. 그러나 웃으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잠깐 동안만 타고 다닐 것 아녀요?』『이를테면 마술가마가 등장하는 장면에만 타고 다니겠죠』
『그런 걸 왜 그렇게 신경 써서 만드세요. 아무 재료나 써서 간략하게 만들면 안 되나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젬마씨 생각해 보세요. 수만 명의 관객들이 쳐다볼 마술가마 아닙니까. 그걸 제가 만드는데 아무렇게나 만들 수 있습니까』
그녀는 토마스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머나, 그래서 이렇게 잘 만드시는 거예요?』
그녀는 감탄한 눈빛으로 미완품인 마술가마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눈에도 볼품없는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사본을 꺼냈다. 마술가마의 완성된 모습을 지금 당장 보여줄 길은 이 길밖에 없었다.
『젬마씨, 도안을 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마술가마의 완성된 모습을 말입니다』나는 그녀의 눈 앞에 사본을 펼쳤다. 이로써 둘의 어깨가 자연스럽게 기대졌다.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난다.
『어머! 정말 마술가마 같군요. 이게 완성되면 저에게 한 번 타 보도록 권해 주시지 않겠어요?』
나는 쾌히 승락했다.
『네 그럭하구 말구요.』
그녀는 도안에 나타난 칫수를 보았다. 아주 작다는 것을 곧 알아봤다.
『토마스씨, 이건 꼬마들밖에는 못 타겠군요.』
참 그렇구나 싶은 찰나, 나는 곧 해결책을 생각해 냈다.
『그건 염려 마십쇼. 젬마씨가 탈 수 있도록 칫수를 늘이겠습니다』
그녀는 까르르 웃고 말았다. 토마스가 정말 그렇게 할 것 같았다.
『토마스씨, 괜히 그래본 거예요. 저 때문에 크게 만들어 봤자 꼬마들이 못 메고 다닐 거예요』
나는 겸연쩍게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하여간 저는 이 마술가마를 잘만들어 낼 겁니다. 여기 그려졌듯이 산호 조각을 새겨져 마술가마의 거죽에 붙일 겁니다』
나는 산호조각을 새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녀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그녀는 토마스가 열을 올려서 얘기하는 산호 조각을 별 신통찮게 보였다.
『이런 게 산호 조각이었군요. 혹시 사슴 뿔 따위가 아닌가 여겼어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지적해 보이며 말했다.
『그러문요 마술가마에 사슴 뿔 따위가 뭣 땜에 해당되겠어요. 모조리 산홉니다』
『토마스씨 왜 마술가마의 장식품으로 산호를 택하셨어요?』
그녀는 궁금했다.
『그건 뻔하잖습니까. 산호는 가장 구하기 힘든 거고 또 값진 것 아녀요. 그래서 숲 속의 요정들이 가지고 다닐만 한 겁니다』
『허지만 산호는 바다에서 나는 것 아녀요? 어째서 숲 속의 가질 수 있겠어요?』
그녀는 토마스가 마술가마에 너무 미쳐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젬마씨는 그것도 모르세요. 숲속의 요정들은 바다의 요정들과 무역을 했단 말예요』
그녀는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토마스씨 요정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나는 쉽게 대답했다.
『젬마씨 우리들이 극장에서 요정들을 보도록 합시다. 요정들이 이 마술가마를 떼메고 다닐 테니까요』
이때 칸막이의 문짝이 휘딱 열렸다.
그녀는 재빨리 토마스에게서 떨어졌다. 김군이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고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얼떨떨해진 채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러세요 김군?』
자식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아가씨 차별 대우 하지 맙시다. 누구는 씨이고 누구는 군입니까. 왜 제가 아가씨 집에 붙어 있는지 알기라도 하십니까』
하고 능글맞게 소리쳤다.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아버지께 야단맞은 토마스가 가여웠던 거예요. 댁도 그런 아량쯤은 갖고 있지 않으세요』
김군은 조금 누그러진다.
나는 그녀를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와 김군이 어울려 보였다. 왠지 그렇게 나의 눈에 비쳤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내게 대해준 호의는 사랑이 아닌 동정이라고 알아 버렸다.
그녀는 토마스의 달라지는 눈빛을 보았다. 그것은 얼른 알아내기 힘든 미지수와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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