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의 작품 활동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흔히들 인생의 황혼기라 일컫는 70 고령에 아랑곳없이『인생은 70부터』라고 힘주어 말하는 주경 화백 (70ㆍ후라 안젤리꼬)의 눈동자는 젊은이 못지 않은 패기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1905년 12월 8일 서울 청량동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경 화백은 어릴 때부터 회화에 능한 외삼촌의 영향으로 그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서당에 다닐 때는 동료의 그림 솜씨를 부러워하고 당시 처음 등장한 환등이나 무성음 영화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그림에 손대기 시작한동기였다고 들려준다.
그 후 중앙고보 시절에는「거미줄」이란 그림을 통해 약육강식을 상징하고「희연」이란 수채화로 식민지 백성을 한탄하였는가 하면「유리컵의 꽃」외 이미「가족」이란 추상화를 시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추상화 개척에 발벗고 나섰다.
1928년 중앙고보를 졸업과 동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천단화학교와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차례로 거치면서 일본서 14년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일본에서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1932년 조선 미술학우회를 창립, 회장직을 역임하고 35년에는 1백30명이란 미증유의 한국인 전위작가들로 구성된「백우회」를 조직, 43년까지 회두로서 일해 왔다.
이「백우회」가 황소와 같은 백의민족 곧 한국민을 상징한다 하여 37년에는 일제의 압력으로 그 명칭이「재동경미협」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쓰라림도 맛봐야 했다.
이러한 일제의 눈총 속에서도 한국인들을 위한 미술학교를 건립키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2차대전으로 끝내 좌절된 채 대구에 정착하게 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조선건국위원회 경북미술대 조직 대표로서 해방 기념 전시회 개최를 비롯, 대구 사범대학 강사 국무총리 비서관 서울 홍익대 미술 교수 경북문화단체연합회 최고위원(미협 이사장) 및 한국미협 경북지부장 등을 역임하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작품 활동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나 한국 원로 작가로서의 위치는 지방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채 30여년이나 그늘에 덮여 왔었다.
그러나 68년 신문화 60주년 기념 초창기 작가전과 72년 한국 근대미술 60년전 출품을 계기로 중앙무대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부터 72년 예총10주년 기념 전국 예술인대회 미술공로상 수상을 비롯 금년 7월 서양화 부분 11인의 원로작가 중 1인으로 선정되고 국전 추천작가로 위촉되는등 서서히 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이번에 33년 만에 처음으로 고희(古稀) 기념 개인 회고전을 서울서 갖게 되었다는 주경 화백은 이 전시회가『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기회』로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항상『웃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그의 생활 신조는「미소의 화가」로도 화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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