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藤傳文이 안중근에 의해 암살되었을 때 국제 여론은 도리어 伊藤을 동정하는 편이었으며 재한 선교자들에게도 한국인에게서처럼 伊藤이 그렇게 악질로 생각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니면 한국을 위해 노력하다가 희생된 한국의 은인으로 평가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교사들도 그가 한일합방을 주장한 장본인이었을 뿐더러 선교사들마저 한국에서 축출하려고 음모했음을 알게 되니 실로 놀람을 금치 못했다.
『伊藤의 무덤 앞에서 위대한 고인의 영전에 한일합방을 알리는 특별의식이 있었다. 그가 생전에 동경 정부의 지시를 따라 다만 한국의 자주 독립의 확보를 위해 일할 뿐이라고 한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실은 합방이 시초부터 伊藤 자신에 의해 계획되었을 뿐더러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공적으로 시인되었다』『어리석은 얘기를 하나 할까 하는데 확실치 않은 소식은 아니다. 얘기는「하루빈」에서 伊藤이 암살되었을 때 외국 신문들이 보도한 사실들이다.
伊藤을 제독이라고 말한 신문도 있고 그를 장군이라고 일컬은 신문도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최대 가톨릭 가관지「태불리트」는 로마 특파원의 기사라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즉 한국의 통감으로 있을 때 伊藤의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그가 교황청에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이 편지에서 伊藤은 현재 한국의 천주교 선교사들을 모두 다른 회의 선교사로 대치해줄 것을 청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빠리」외방전교회원인인 선교사들은 한국 신자들에게 노서아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주입시키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바티깐」은 이 고소를 증명해줄 것을 東京 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민 주교에게도 서신을 보내어 선교사들이 대일관계에서 신중을 기하고 신자들의 동요를 막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촉구했다. 교황청의 요청에 대한 일본의 회답은 애매하였고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東京 정부는 정확한 소식을 모르고 있으며 또 한국의 통치는 완전히 伊膝의 권한에 속해 있고 뿐더러 선교사에 대한 여하한 조처도 한국의 평화를 초래하기 위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하였다. 伊藤은「바티깐」이 자기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알자 자신이 직접 로마로 가서 레오 13세 교황을 뵙고 그의 의견을 설명하기로 결심하였다. 伊藤도 받았음은 분명하다. 알현을 끝내고 나오면서 伊藤은 이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지혜의 소유자이다! 그분은 한국의 비참한 상태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일류급의 외교관이다! 이날부터 伊藤은 한국 佛人 선교사 대치에 관한 문제를 더 이상 문제로 삼지 않았다』
또한 카나다의 한 신문에 전하는 바는『한국에 불인협회란 단체가 조직되었는데 이 단체는 가톨릭에 귀의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대 세력을 구성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90여명의 회원을 포섭했다는 소식이었다.
8월 9일 외부대거이 난데없이 한국 천주교회가「朝鮮 亡國史」를 편찬 중이라니 사실이냐고 교구 본부에 조회해 왔다. 구체적인 내용인즉 이러하다.『민 주교와 安 신부 및 서울의 몇몇 신부들이「조선 망국사」의 편찬을 계획하고 추진 중이라는 소문에 관해 최근 외부대신 고마쯔가 佛國 영사 빠이야르씨에게 문의해 왔다. 민 주교 등은 이 사업을 위하여 전국 13도에 서한을 보내어 한국의 애국자ㆍ정객ㆍ망명객 등에 관한 정보를 의뢰했다는 것이다. 민영환의 자결, 안중근의 의거 등이 경탄의 대상으로 묘사될 것이고 그들의 사진도 삽입될 것이라고 한다.
14만 부를 인쇄할 예정인데 佛語판이 10만 부, 한글판이 1만 부, 한문판이 3만 부가 될 것이다』
민 주교는 외부대신에게 보내는 회서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대신이 항간의 낭설을 쉽게 믿은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나서 아마도 최근 순교자들의 증언 수집을 의뢰하기 위해 전국 모든 본당과 공소에 발송한 주교의 사목 서간이 이 큰 소극의 발단이 된 것 같다고 하였다.
일본 당국은 한일합방 조약의 조인과 선포를 목전에 두고 무엇보다도 재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귀추를 예의주시하였고 그래서 기회가 있는 대로 그들을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위협도 했다. 또한 천주교 선교사들의 친로적이고 배일적인 동향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특히 일본 제신문들은 자주 선교사에 대해 언급하면서『재한 선교사들이 시국을 정시하고 일본인의 감정을 건드리지 말 것과 그들 한국인의 행동과 저술을 감시하고 억제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 밖에 터무니 없는 소문들을 일부터 조작해 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한국의 선교사들이 일본의 보호 정치를 찬성한다는 말을 했다든가 만일 선교사들이 통감부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들의 1년 예산이 통감부의 두 배인 무려 7백만 원이나 되기 때문이다』란 것 등이다.
5월 17일 통감부는 재경 외국인 선교사 중 지도급 인물들을 초청하여 큰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주최자 日人 이시즈까는『여러분과 같이 하루 저녁을 즐겁게 지내려고 한 것뿐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헌신과 성과에 존경과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고 인사말을 한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서 소위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장황하게 力說했다.
『정치와 종교는 각기 별개의 것이며 결코 혼동되어서 안 됨은 췌言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통감부는 종교 사정에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방면에서 여러분을 돕고 싶습니다. 항간의 신문들이 마치 기독교 선교사와 통감부 사이에 어떤 오해나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 것을 퍽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어떠한 오해도 있을 리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종교의 사명을 잘못 이해한 데서 왔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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