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얼굴도 본 일 없는 한 주교의 도움으로 공산당 치하의 재산을 무사히 가져올 수 있었던 신자가 10여년에 걸친 집념 끝에 사재 1억2천여만 원을 들여 지금은 생사를 알 길 없는 그 주교를 추모하는 보은(報恩)의 기념성당과 기도의 집을 세우고 24일 오후 2시 축성식을 갖게 됐다.
경기도 인천시 가정동 340의 4, 경인고속도로 석남인터체인지 오른쪽 범산 기슭 2만여 평의 넓은 대지 위에 연건평 5백 평의「홍용호 주교 기념성당」과「기도의 집」을 세운 집념의 주인공은 서울 후암동본당 전 총회장을 지낸 칠성여업주식회사 대표 유백룡 옹(70ㆍ프란치스꼬ㆍ서울 용산구 후암동 55의 15).
평북 박천이 고향인 유 옹은 해방 후 공산당이 그 마각(馬脚)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47년 7월 월남을 결심했다.
일제하에서도 못된 일본인을 때려 눕힐 만큼 자유의식이 강했던 유 옹인지라 점점 죄어 들어오는 공산당 감시의 손길을 빠져 나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지만 당시 상당한 사업 기반을 갖고 있던 그는 땀 흘려 모은 재산을 공산 치하에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자인 형수 민 요셉피나 여사에게 당시 화폐 1백만 원(圓)을 적당한 인편에 서울로 전해 달라고 맡기고 그 해 7월 1일 월남했다.
이 돈을 맡은 형수 민 여사는 가까이 모시던 평양교구장 홍용호(프란치스꼬) 주교에게 상의하자 홍 주교는 얼굴도 대한 일 없는 유 옹의 일이지만『빨갱이들한테 줄 수는 없지』하면서 마침 남으로 가는 미국 신부 편에 그 해 8월 중순께 서울에 와 있던 유 옹에게 무사히 건네 주었다.
그 후 유 옹은 이 돈을 밑천 삼아 나쁜 일만 아니면 닥치는 대로 사업을 벌여 남 못지 않은 기반을 잡게 되었고 64년 그의 나이 환갑일 때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도 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의 은인이 홍 주교임은 몰랐다.
그러나 돈을 전해준 미국인 신부를 통해 홍 주교가 은인임을 알게 된 유 옹은 49년 5월 14일 평양 서포에서 공산당에 납치된 후 생사를 모르는 파란과 수난의 목자 홍 주교의 덕을 추모하고 남을 위해 살다 간 그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본받겠다는 일념으로 이 일을 추진해 왔던 것.
더욱이「이웃을 도우면 도움을 받게 된다」는 신념에서 살아온 유 옹이「남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양떼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한 홍 주교의 생애를 들었을 때 자신에게 보여준 사랑을 혼자만 간직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이 사업을 통해 사랑과 도움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유 옹은 자신의 신념은「공생주의」이며 이 일을「마음의 녹화사업」이라고 표현한다.『필생의 사업으로 삼고 굶어도 좋다는 생각에서 가진 것을 거의 다 들인 셈이지요. 며칠 전 아내가 이제 우린 가진 게 없으니 당신이 세상 떠나면 어떡하느냐면서 웁디다.』10여년간 기념 성당 터를 잡기를 10여차례. 결국 지금도 전교를 열망하고 있을 홍 주교의 유지를 받드는 뜻에서 이곳을 택했다고 한다. 홍 주교 납치 25주년을 앞두고 지난 2월 초 착공, 건축비만 7천만 원이 들었다.
유 옹은 이 시설 일체를 홍 주교와 인연이 깊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에 기증, 앞으로 수녀원이 관리하는데 수녀원은 앞으로 기념관을 꾸미고 수녀와 일반 신자를 위한 기도의 집으로 사용한다. 유 옹은 그 나름대로 이곳을 성지로 가꾸어 신자 공동 부락을 세우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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