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김군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자식은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면서『뭐 곤란해할 것 없습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하는 놈이니까요』하고 인심 쓰는 척 늘어놓았다.
그녀는 사태가 변하기 전에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무슨 말이든 토마스에게 한마디 하고 나가야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갔다.
『토마스씨, 딴 생각 마세요. 기한에 늦지 않게 마술가마를 완성시키세요』
2
나는 연장 망태기를 다시 들었다. 마술가마를 완성시켜 놓지도 못하고 회장님 집을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김군의 능글맞는 상판대기를 한 대 갈겨주지 못한 게 제일 한스러웠다. 자식은 그녀가 나가자
『박형,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 게 좋소』하고 대뜸 지껄였다. 나는 이렇게 응수했을 뿐이다.
『김군 네 일칸에 가서 일이나 해』
『암 해야 하구 말구』자식은 한 수 더 뜨며 제 일칸으로 들어갔다. 가서는 목청껏 유행가를 불렀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생각의 핵심도 분명치 않았다. 그녀에 대해서 웬만큼 한 생각이 떠오르면 김군이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망치로 아무거나 꽝 때렸다. 김군이 박살나는 광경이 망치 소리에 떠올랐다. 그러다간 연해 사라졌다. 나는 마침내 마술가마를 손대기 시작했다. 목재가 더 필요해졌다. 나는 대패 다이 밑에서 몇 토막의 목재를 꺼냈다. 옆칸에서 김군의 소리가 들려왔다. 자식은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
『감히 누구 것이라고 제까짓게』나는 이 말의 뜻을 곧 알아채렸다. 그리고는 이빨이 으드득 갈렸다. 나는 자식과 충돌할 구실을 장만하기 위해 목재고로 들어갔다. 고급장을 만들기 위해 따로 제껴둔 각목을 여러 개 꺼냈다. 나는 이것을 들고 김군의 일칸으로 거쳐서 나의 일칸으로 들어갔다. 김군이 후딱 뒤따라 들어왔다.
『박형 정신 살짝했소?』나도 만만찮게 쏘아붙였다.
『왜!』
『이 목재 도로 갖다놓고 오쇼』자식은 노가다만 감독처럼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도 좀 써야겠어. 고급장만 단 줄로 알아!』나는 각구목을 대패 다이에 올려놓고 톱을 쥐었다. 각구목을 짜를 태세를 취했다.
『박형 정말 이러기요?』자식의 손이 목재를 가로막았다.
『손 비켜 임마!』나의 험악해진 눈초리가 그를 꿰뚫었다. 자식은 찔끔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내뱉았다.
『박형 톱으로 사람 칠 거요』
『이 새끼 죽고 싶어 환장했나!』나는 톱을 추켰다. 자식은 정말 톱으로 칠 줄 알았는지 옆칸으로 후딱 달아났다. 그리고는 좀 조용해졌다. 나는 비로소 분이 좀 풀렸다. 나는 각구목을 한편으로 밀쳐놓았다. 대패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까닭 모르게 슬퍼졌다.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은 두 줄기를 이루어 불 위로 흘러떨어졌다. 묘하게 참으로 묘하게도 나는 이 슬픔 속에서 불행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이 순간을 점철시키는 것, 이를테면 대패 검불을 툭툭 털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한갖 직공에 불과한 나와 그녀를 대조시켜 놓은 거리감이었다.
『형』
명구가 들어왔다. 옆칸에서 일하고 있는 견습공이다. 자식은 처음 공장에 들게 되자 김군의 기술이 우월하다고 보고 김군 밑에 매인 것이다.
나는 대패질을 멈추고 얼른 손바닥으로 눈 아래를 문질렀다.
『명구가 어쩐 일야?』
명구는 나의 일칸에 들어오는 일이 퍽 드물다. 물론 김군이 그렇게 시켰다. 그런데 이 날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지난 성탄절 종각 위에 세울 직경 2m 크기의 별을 만들었는데 명구로 인해서 낭패를 당한 일이 있었다.
자식은 그날 도와주겠노라고 함께 끼여들었다. 나는 그에게 끌구멍 파는 걸 맡겨 주었다. 나중 가서 별을 조립해본 결과 사죽이 비틀어진 별이 되었다. 나는 별을 바로잡기에 무진 애를 먹었던 것이다.
『형 좀 도와 줄까요?』명구는 마술가마의 미완품 곁으로 다가간다.
나는 퍼뜩 일이 떠올랐다.
『어라, 망친다 망쳐』
명구는 낄낄 웃는다. 자식도 별의 기억이 난 모양이다.
『이젠 실수 같은 건 않아요』
대패 다이에 껑충 올라 앉는다.
『귀찮다. 가서 네 할 일이나 해』나는 명구를 대패 다이 아래로 밀어뜨렸다. 자식은 밑에 떨어져서 빤히 나를 올려다본다.
『형, 사람 무시하기요』기가 찼다. 나는 망치로 대패 다이를 꽝 때렸다. 그리고는 견습공들에게 곧잘 치는 호통을 쳤다.
『세 개를 헤는 동안 안 나가면 망치 날라간다!』
명구는 제 입으로 하나ㆍ둘ㆍ셋 하면서 출구 밖으로 달아난다. 그리고는 크게 외친다.
『성당 일 두 번만 했음 사람 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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