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런 문제를 가지고 글을 쓰게 되었다. 하도 문제가 크기 때문에 엄두도 나지 않지만 무엇인가 평소의 생각을 간추려 보는 것으로서 책을 면할까 한다. 헌데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결론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결론부터 암시해 두는 것이 편할 것 같다.
얼마 전에 본지에「토착화」라는 제목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다각도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다툰 일이 있었다. 이처럼 토착화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아직 한국에 토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런데「토착화」와「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으며「토착화」는「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제 겨우 토착화를 논할 단계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한국 문화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답은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라든가 문화라든가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광범하고 다양한 것이며 따라서 종교와 문화와의 관계도 여러 가지로 생각되고 주장되어왔으며 현실을 보는 눈도 그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한국 가톨릭 또는 한국 문화라고 할 때 실제로 무엇을 뜻하며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을 것이 예상된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종교라든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씩이라도 거쳐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우리가 종교라고 할 때 그것은 초자연에 대한 신앙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서 자연에 대한 생각도 정립될 것이다. 말하자면 가톨릭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인간적인 경험 세계는 자연계이며 이것은 그 자체로서는 불완전하고 미완성 상태에 있으며 그것을 궁극적으로 완성하는 목표로서 초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신앙하는 종교인 것이다. 다음에 문화라는 것은 초자연에 관계되기보다는 자연계에 관계되는것이며 우리 인간에게 소여된 것(야생, 혹은 미개발 상태로)을 인간의 능력으로 개발하여 더욱 발전시키고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우리는 문화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외계 즉 외적 자연뿐만 아니라 내계 즉 인간 정신계에도 해당된다. 외계를 개발한 것은 물질적인 가치로 정신적인 가치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을 문명이라 하고 정신적인 것을 문화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원리적인 구별은 못 되는 것이며 근본에 있어서는 용어상의 차이밖에 없는 것이라고 본다. 자연계에 있어서는 정신 없이 물자 없고 물자 떠나서 정신이 따로 없듯이 문명 없이 문화 없고, 문화 없이 문명도 없다는 뜻이다. 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이고 오류이며 기형적인 것이다.
이처럼 문화 또는 문명이라는 것이 내적 자연 또는 외적 자연을 개발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그것을 더욱 향상시키고 완성시켜서 좀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자연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초자연에로 이끌어서 궁극적인 자연의 목표를 완성하여 자연을 구제하는 것과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가 생기는데 그것은 우연하고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본질적이고 생명적인 밀도를 가진 것이다.
이처럼 종교와 문화는그 사명과 방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자연과 초자연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혼동하는 과오가 생기기 쉬운 것이다. 종교의 목표가 문화에 있으며 따라서 종교는 여러 문화적인 현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종교가 어떤 시대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면 그것이 종교의 마지막 목적을 달성한 것이며 그와 반대되었을 경우에는 그 종교가 과오를 범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과오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가톨릭 교회가 개화 초기에 한국 근대화에 기여를 했다는 것을 역사적인 뜻으로 자랑하기보다는 개화기의 한국 문화가 한국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얼마나 성화되었는가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한편 한국 문화의 완고가 얼마나 문화의 참뜻을 가로막았는가 하는 것을 우선 뉘우쳐야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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