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묵주의 기도 형식은 대개 12~13세기에 알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긴 줄에 진주알이나 곡식알을 엮은 염주 따위는 모슬렘교나 힌두교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며 아마 묵주는 이런 종교에서부터 받아들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묵주의 기도」란 말은 영어로「Rosary」이며 이 말은 이태리어로는 로사리오(Rosario)라고 하는데 곧「장미밭ㆍ장미화단ㆍ장미화관」이란 뜻이다. 이 이름 역시 13세기부터 불려졌다. 즉 매번 성모송(아베 마리아)을 외울 때마다 한 송이의 장미꽃이 하느님 어머니의 성화를 꾸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2세기에 이미 50번 혹은 1백50번의 성모송을 외움으로써 또는 엘리사벳의 인사와 함께 마리아에게 인사를 드렸다. 최초로 마리아에게 대한 천사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인사가 함께 사용된 것은 대림절 제4주일의 미사의 봉헌송(Rorate)에서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현재 바치는 성모송의 둘째 부분(청원기도)이 없이 오직 인사 말씀만으로 드려졌다. 그러나 15세기에 이르러 성모송에「신비」가 결들여졌으며 또 16세기에는 도밍고회 신부 알라누스 루패는 1백50번의 성모송에 1백50번의「신비」와 15번의「주의 기도」를 첨가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또 사용하고 있는「신비」들은 1483년에 널리 보급 사용되었으며「묵주의 기도」는 15세기에 발전을 보았다. 아베 마리아의 둘째 부분인 청원기도는 30년 전쟁시(時)부터 바쳐졌다. 1571년 교황 삐오 5세께서 10월 7일을「묵주의 기도 축일」로 정하셨다.
묵주의 기도는 때와 장소를 별로 구별치 않고서 또는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바쳐질 수 있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기도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부터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거듭 되풀이되는 성모송에 싫증을 느끼게 하는 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배척을 받는가 하면 늙은이에게만 합당한 기도이며 시간 낭비라는 등등의 비난을 받고 있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과연 이 기도의 참뜻을 알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또 우리는 역사 안에서 많은 위인들이 이 기도를 열심히 또 즐겨 바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묵주알을 굴리는 것은 외적인 것에서부터 정신을 잘 집중키 위한 방법의 도구일 뿐이지 묵주알 그 자체에 어떤 의미가 깃들여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거룩한 말씀들이다. 아베 마리아가 가장 많이 되풀이되지만 그 기도의 첫 부분은 신약에 근거를 두고 있다.『마리아여 당신께 인사드립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셨습니다.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루까 1장 28ㆍ42절)라는 엘리사벳의 인사 말씀이며 둘째 부분은 마리아에게 대한 우리의 청을 아뢰는 것이다(「주의 기도」는 주님 자신이 우리에게 모든 크리스찬적 기도의 모델이며 내용으로서 주신 것이다)
「신경」(신앙고백)은 옛날 크리스찬적 증거의 표징으로써 사용되어 왔다.「영광송」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 찬송이다.
또 시작과 끝에 바치는「성호경」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이미 신자와 구원의 표징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묵주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위의 기도문들을 입으로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신비」속에 잠기어 들어가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었던 마리아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머무는 것이다. 묵주의 기도는 깊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기도이기도 하다. 아베 마리아의 첫 부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끝난다.『태중에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소이다』바로 이 예수란 이름 끝에「신비」가 붙는 것이다.「환희의신비」「고통의신비」「영복의 신비」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 기도 안에서 바로 예수의 모습과 생활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나「십자가의 길」에서처럼 직접적이 아니고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의생애의 내용으로써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도를 바치는 자는 이 기도 속에서 고요하고 거룩한 안정성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특히「십자가의 길」과 비교할 때 뚜렷하다.「십자가의 길」은 길(道) 형태를 갖고 있다. 기도하는 자는 주님의 발자취 즉 한 곳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걸어가며 주님을 따라감으로써 마침내는 목적에 도달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묵주의 기도는 길이 없고 장소가 있으며 목적지가 없고 깊이가 있음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묵주의 기도를 바쳐야 할까? 이 기도의 형식은 극히 간단하지만 그 내용은 아주 풍부하고 깊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것이다. 생생한 상상력과 개방적인 마음의 소유자는 말의 깊이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눈 앞에 그리면서 다시 그 안에서 자신의 실존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적 통찰력과 관련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현시대의 삶의 복잡성에 휘말려 들어가는 자는 이 기도를 바치는 데 어려움을 치루어야만 할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자가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 무엇보다 어려움을 극복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서서히 연습함으로써 배워야 한다. 우선적으로 거듭 반복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극복해야 함은 곧 묵주기도의 근본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같은 말의 조용한 리듬이 이 기도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극복한다는 말은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달가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이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본래의 묵상은「아베 마리아」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아름다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야 하듯이 우리도 올바르게 묵주의 기도를 바치려면 사랑 그런 인내가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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