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자 교리교육은 본당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대개 4~6개월가량 실시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예비자들은 가톨릭신자로서 갖추어야 할 초보적인 신앙지식과 전례의식 등을 배우게 된다.
세례받기 급급
그런데 많은 예비자들은 이 기간 중 예비자 교리교육의 1차적, 또는 가시적 목표인 「세례받기」에 집착하는 반면 교육과정 자체는 등한히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진지한 자세로 신앙을 연구하거나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고자하는 노력과 성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예비자들이 교리교육기간을 세례 받는데 필요한 「하나의 절차」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데서 비롯하는 듯하다.
게다가 예비자 교리교육을 실시하는 본당 역시 영세자수 확보에 급급한 나머지 교육기간의 중도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하며, 심지어 교육이수시간 미달자에게도 세례를 주기도 한다.
또 본당에 따라서는 주 교회의가 결정한 「최소한 6개월 교육」의 지침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4개월이나 5개월 만에 영세시키는 경우도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유능한 교리교사와 효율적인 교리교수법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어 「부실 교육」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그 결과 냉담자를 비롯한「형식적인 신자」양산에 예비자 교리교육이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의 교세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 15만5천7백54명의 새신자가 늘어났으나 냉담자와 행방불명자도 3만8천29명이나 늘어났다.
많은 본당신부들은 새신자의 증가에 비례해서 미사 참례자수는 그 만큼 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신부들은 『최소한 몇 년간 분명히 1천명 이상의 영세자를 직접 배출했음에도 3~4년 전이나 현재나 미사 참례자수는 큰 변함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부관신자 양산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과 일선 사목자들은 현재의 예비자 교리교육의 내용과 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현 교육의 문제점으로△교리지식 주입식 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는 반면 기도생활ㆍ성서읽기ㆍ신앙실천 등 신앙생활 교육을 등한히 하는 점과 △교리내용 중 「그리스도론」등 본질적인 것을 심층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점△많은 예비자들이 인생관의 대변화를 가져오는 「회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세례를 받는 점, 이 밖에 △전문교리교사 부족△교리반 인원 과다△교육기간의 짧음을 거론하고 있다.
부산교구 사목국장 권지호 신부는 『교리교수 방식에는 지성ㆍ영성ㆍ공동체성의 세 가지 차원이 있는데 모두가 조화를 이룰 때 훌륭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전제, 『여태까지는 주입식 강의 중심의 지성적 차원의 교육체계가 강조되는 반면 영성이나 공동체적인 차원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권신부는 냉담의 주요원인은 바로 이지성의 강조 때문이라고 말하고 『머리만의 신앙은 결국 신앙과 현실을 분리시키는 이른바 「이원론적 신앙관」을 야기시킨다』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본당은 예비자 교리교육 중 기도생활ㆍ성서읽기 등의 영성교육과 공동체교육을 등한히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대개 성지순례 등을 한번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기간이 짧은데도 원인이 있지만 개인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기도생활을 충분히 가르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작년 말 영세한 회사원 정모씨(요셉ㆍ33)는 『가끔 마음이 심란할 때 기도를 바치고 싶은 생각이 일지만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한다』며 『개신교신자 친구가 식사 중 술술 풀어대는 자유기도가 무척 부럽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영성교육 미흡
대구 효복본당주임 이창배 신부는 『절대시간 부족으로 신앙의 요체 밖에 못 가르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신앙 실천교육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며 『공동체적 신앙경험을 통한 영성교육을 위해서는 20명 이하 단위로 수강생수를 죽이는 것도 한 방법이나 인력부족이 난제』라고 말했다.
한편 기도생활 못지않게 성서읽기도 영성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교리시간에 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도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는 기성신자의 성서읽기 비율의 저조를 야기 시키는데 87년 가톨릭신문사 발행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거의 매일 성서를 읽는다」는 사람은 조사대상자의 9%에 불과한 반면 「한 달에 한번 또는 한 번도 읽지 않는다」는 사람은 무려 절반에 가깝게 나타나고 있다.
부산교구 교육국장 이찬우 신부는 『성서읽기의 생활화를 위해 예비자 교리교육시 부터 성서 읽는 법을 깊이 있게 가르쳐야 한다』며 『모든 교리내용과 연관된 성서구절을 발췌, 이에 관한 색인과 주석을 단 부교재를 발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교리내용 중 「그리스도론」과 「구원론」등 신아의 요체부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서울 세종로본당주임 유재국 신부는 『교리를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구분,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것, 성체성사 등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병자성사, 견진성사, 계명편 등은 부차적인 것』이라면서 『본질적인 교리를 중심으로 가르치되 교리의 완전성을 위해 총체적, 그리스도 중심으로 가르쳐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과거의 제도나 조직으로서의 교회와 성직자 중심의 교회론을 탈피, 「친교의 신비」 「하느님의 백성」 「인류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 교회 등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이후의 새 교회론을 깊이 있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사제직」「왕직」「예언직」등의 평신도 사도직의 올바른 위상정립을 위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회개과정 필요
교리교육 관계자들은 『예비자 교리교육 때 평신도 위상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으면 영세 후 새신자들의 평신도관은 종래의 「단순한 사목대상자」 또는 「수동적인 평신도」등으로 굳어져 능동적인 신앙생활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예비자 교리교수법과 관련, 교황청은 1972년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한「어른 입교 예식서」라는 성인 예비자 교리지침서를 발간, 현대세계의 상황에 적합한 교리교수안을 내놓은바 있다.
이 지침서는 예비자 교리교육 단계를 △전(前) 예비기간 △예비기간 △정화와 조명의 기간△입교성사기간△신비교육 기간 등 5단계로 나누고 있다.
서울 혜화동본당주임 이상훈 신부(前가톨릭교리신학원장)에 따르면 전예비기간은「왜 종교를 가져야만 하는가」「인생의 종말은 무엇인가」등의 물음을 품고 찾아온 예비자들의 철학적 신앙관을 재정립시키는 기간이며, 예비기간은 이 철학적 신앙관이 깨트려진 뒤 이를 예수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바꾸는 단계이다.
정화와 조명의 기간은 하느님의 빛으로 인생관이 변화되는 단계, 곧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는 단계이며, 입교성사 단계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되며, 마지막 신비교육 기간은 묵상ㆍ영성체ㆍ애덕실천을 통해 그리스도교적인 창조생활을 영위케 하는 영세 후속교육이라는 것이다.
이상훈 신부는 『원칙적으로 이를 토대로 해야 하나 실제로 이 5단계교육이 철저히 시행되는지는 의문』이라면서 『현재 유럽교회가 신앙교육을 등한히 해왔기 때문에 많은 신자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그리스도국화 되어가는 점을 상기할 때 한국교회는 예비자가 반드시 「회개과정」을 거치도록 교육, 단순한 「종교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중심의 투철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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