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현대화를 모또로 한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가장 뚜렷이 부각된 문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와 가톨릭 교회를 현세계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후안 에르바스 주교(꾸르실료 창설자)는 이에 대해『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크리스찬 생활의 꾸르실료는「바티깐」공의회의 교부들이 추구하는「모든 조건」을 겸비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말하고 교회 현대화의 방편적인 해답을 주었다.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는『정교한 방법으로 고안된 한 자루의 좋은 연장을 여러분 주교님들의 수중에 쥐어 드립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전취하는 꾸르실리스따 용사들입니다. 그들은 교회 쇄신에 헌신하고 가정 생활을 그리스도적으로 갱신했다. 본당 내에 활력소를 주었고 액션단체에 생명을 증가시켰으며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성소를 불러일으킨 업적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현대 교회 안에서의 꾸르실리스따의 존재 의의를 천명했다. 그리고 현대 교회의 자각하고 쇄신하고 일치하고 대화하는 원리와 방책이 꾸르실료 운동과 꾸르실리스따의 생활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참된 크리스찬 생활을 건설하고 사회를 크리스찬적으로 쇄신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꾸르실료 운동과 꾸르실리스따는 분명 교회를 현대화하는 하나의 채널(경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꾸르실리스따는 교회의 현대 적응의 유능한 기수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고나 추기경은『만일 성 바오로 사도가 꾸르실료를 알았다면 그도 꾸르실리스따였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후안 에르바스 주교는『성 바오로 사도가 다시 살아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스페인으로 왔다면 그의 열렬한 추종자는 꾸르실리스따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63년 12월 14일 바오로 6세는 꾸르실료의 주보는 바오로 사도라고 선언해 주었다.
꾸르실리스따는 막연히 이상과 순종과 사랑을 논할 것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의 이상과 순종(자기 포기)과 사랑을 흠모하고 따름으로써『나는 그대들에게 기대를 건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간곡하신 말씀에 응답할 수 있는 꾸르실리스따가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스테파노의 순교를 당연히 여겼던 청년 바오로의 생활은 우리들이 꾸르실리스따가 되기 이전의 생활과 비유할 수 있다. 또한 그가「다마스커스」로 가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나니아에게 가서 세례를 받을 때까지 3일간이 걸렸다. 꾸르실리스따도 3일간의 꾸르실료를 받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바오로는 자각하고 쇄신되었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를 완전히 갱신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주여, 나로 하여금 무엇을 원하시나이까』라고 응답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위대한 결단의 순간이었다. 이 물음은 전 세계 꾸르실리스따의 형제자매가 누구나 제기하였던 물음이다.
바오로의 생애는 무서운 모험의 연속이었고 그는 2~3명의 동지와 때로는 단신으로 초인적인 정복을 감행하는 데 어떤 값을 치루었나는 꼬린토후서 11장 20~29절까지의 자신의 증언으로도 명백히 알 수 있다.
나아가서 그는 그리스도와의 접촉과 형제자매들과의 접촉을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한 최상의 사도이다. 따라서 바오로 사도는 꾸르실료와 꾸르실리스따의 원리임으로 우리는 그를 뒤따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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