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본질은 윤리론이다. 구체적인 사회 체계의 그리스도교의 윤리 가치를 투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쓴 책으로「유토피아」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종교문제가 아니라 윤리문제이기도 하나 그 윤리의 기초를 종교에 두고 있으며 이 책의 중심 사상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교 사상이다.
또한「유토피아」는 여러 가지 특성을 지닌 중에서도 사회를 풍자하는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나 그러한 풍자보다도 인간의 악덕에 대한 비통과 분노가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노는 하나의 사회 반항을 보여주고 있으나 모어는 권력 계급들간의 교체 혹은 정부 형태의 변경을 가져오는 혁명보다는 더 깊고 근원적인 혁명 즉 도덕혁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새롭고 건설적인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들을 양성하지 못한다면 제도의 변경은 무가치하다고 믿어 풍자 형식을 통해 그 자신의 윤리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1499년 영국의 귀족 윌리암 롱조이의 초청으로 에라스무스가 영국에 왔을 때 이 두 사람의 인문주의 학자는 곧 서로 의기투압하여 그들의 우정과 함께 사상적으로 깊은 유대를 맺게 되었다. 따라서 모어는 에라스무스의「바보 신예찬」의 저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모어의「유토피아」는 1515년 모어가 벨기에의「앤트워어프」에 외교 사절로 체재 중 에라스무스에게서 소개받은 피터가 일즈와의 대화에서 착상을 얻어 집필된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정이 일시 냉각된 것은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공공연히 가톨릭에도 전하여 종교개혁운동의 파문이 유럽에 확대되면서부터이다. 종교개혁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에라스무스와 모어는 가톨릭의 자기 숙정(自己肅正)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였으나 개신교의 개혁운동에 대해서는 다소 상이한 견해를 가짐으로써 두 사람의 정신적 교류에 암영이 비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모어는 가톨릭 및「로마」교황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는 태도로 일관하였으며 소위 이단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취했음에 반해 에라스무스는 시종 가톨릭에 속하며 가톨릭의 성직자이면서도 개신교도들과 같이 가톨릭의 고루한 제도 및 부패상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도 모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분열을 극도로 반대하였으며 이 두 사람은 시종 가톨릭의 옹하자로 활동하면서도 교회의 통일과 숙정(肅正)을 바랐었기 때문에 그들이 속하여 있던 교회의 제도에 예리한 비판을 가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국가와 교회와 국민을 위해「유토피아」를 꿈꾸어온 모어에게 현실은 너무나 냉정하고 가혹했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국왕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처형되기 전 고별사도 생략하고 시편「미세레레」를 부르면서『나는 지금 가톨릭의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칩니다』라고 하면서 다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은 것은 오직 항구한 그의 신앙생활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남을 죽이는 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이는 권리까지 박탈하셨다』고 하면서 사형 철폐를 강력히 요구하던 그가 아이러니칼하게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짐은 정녕 현실의 부조리인가?
모어는 1886년 12월 29일 영국 순교자 53명과 함께 복자품에 오르고 1935년 5월 19일 성신강림대축일에 성인 반열에 올림을 받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