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유치원에서는 초조한 마음 가눌 길 없이 기다리고 있는 체칠리아가 팔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여덟 시를 오 분이나 초과하고있었다. 그녀는 마치 이것이 기정 사실처럼 맘에 걸렸다.
혹시 시계가 빨랐던 게 아닐까 하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녀는 여덟 시가 되기 전만 해도 시계 바늘을 채찍질하고 싶은 심정이었었다.
그녀는 오후 늦게까지 그러니까 여덟 시가 되기 전까지 자기가 처리해야 될 모든 일들을 서툴렀으며 토마스도 자기와 같은 상황에 놓였으리라 싶어져서 더욱 손발을 놀렸던 것이다.
그녀는 온 종일 학예 발표 외에 쓰일 모든 준비물들을 이를테면 각 종목마다 사용될 소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색종이를 오려 붙여야 할 것. 모자를 접어야 할 것. 정확하게 숫자를 따진다면 백 가지도 넘는 소품들을 이미 한 달 전부터 시작하여 이날까지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소품들을 전문 취급처에 맡겨서 만들면 좋으리라 여겼지만 그만큼은 경비가 허락되지 않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성당의 여학생들이 틈나는 대로 찾아와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기한 내로 준비물을 만들기는 불가능이었다.
그녀는 요한나 수녀님께 미리 부탁해 두고 있었다. 토마스와 약속 시간을 정했다는 것만큼은 밝힐 수가 없었다.
『체칠리아가 부탁하는 건데 왜 거절하겠니 여덟 시 전까지는 오늘 일을 끝내도록 하지 뭐』
요한나 수녀님은 언니처럼 말했다. 체칠리아의 하루 근무 시간과는 관계 없는 것이기도 한 이 일들.
사실상 규정된 사항을 떠나서만이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녀는 다른 어떤 날보다 즐거웠다. 하루의 시간들이 아름답기조차 했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원한다는 토마스의 목소리가 귀에서 반추되었다.
그녀는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수녀님 남자에 대해서 좀 알고 계세요?』
무슨 질문이든지 곧잘 받아 넘기는 요한나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말문이 막혔다. 처음 당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가끔 처녀들에게서 들어오는 얘기기도 했다.
『남자에 대해서 알고 싶어?』
체칠리아는 만들고 있는 눈사람 벙거지를 머리에 써 보면서 태연스럽게 고갯짓을 했다. 수녀님은 잔뜩이나 색종이를 오리면서 뭐라고 대답해 줄까를 망설였다. 체칠리아에게는 낭만적인 남자가 좋을 것도 같았다. 유복한 가정의 셋째 딸 생활의 어려움을 아직 겪어보지 못한 숫처녀.
『응 얘기해 주마 남자란 말야 여자를 무척이나 탐내는 거야 처음에는 부서질 만치 덤벼들지 그런 다음에는 별 관심 안 두는 거야 왜 그런지 체칠리아 알겠나.』
체칠리아는 그런 상식적인 얘기엔 흥미가 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남자의 체내에 은밀하게 감추어진 욕구 같은 것을 알고 싶었다.
『수녀님 남자의 어디가 가장 멋있죠?』
요한나 수녀님은 입장 난처하게 돼 버렸다. 본질적인 것을 얘기해 버리다면 상대방이 되려 이쪽의 심리를 떠보려고 할 것도 같다. 이것은 수도자로서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요한나 수녀님은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릴까도 싶었다. 그러나 대화의 기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체칠리아는 여자의 어디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지?』
체칠리아는 금새 얼굴이 빨개졌다.
동등한 여자로서 말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이다.
체칠리아는 벙거지에 구멍을 뻥 뚫었다. 그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세 개씩이나 넣고 꿈지락거렸다. 토마스의 모습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그녀는 느껴졌다.
시간은 흘러갔다.
체칠리아의 부탁대로 요한나 수녀님은『참 그렇군 여덟 시까진 일을 마치자고 체칠리아가 그랬는데』
하고 만들기를 끝냈다. 그리고 만든 것들을 잘 간수해서 박스 안에다 넣었다.
요한나 수녀님은 둘이 먹을 만큼 토스트를 꺼내 놓았다. 여기에 짬을 바르면서 둘은 먹어 치웠다. 밀크도 타 마셨다. 요한나 수녀님은 성무일도를 드릴 시간이 되었으므로 허리에 두른 행거치를 끌렀다.
『체칠리아 나 먼저 가니까 문 단속 잘 해놓고 가』
요한나 수녀님은 잊기라도 할 것처럼 일렀다.
체칠리아는 이럴 때가 좋았다.
요한나 수녀님은 체칠리아를 뒤에 남겨 두고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수녀원은 유치원 맞은 편에 있었다.
체칠리아는 추위로 인해 항상 닫혀져 있는 창문들을 점검했다. 카텐을 바로했다. 외부와는 차단된 실내가 되었다. 그녀는 난로의 기름 탱크를 잠갔다. 그리고는 무엇보다도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토마스가 고맙게 보아줄 얼굴인지 조사해 봤다.
오뚝한 콧날 동그란 눈 알맞게 위치하고 있는 입 그녀는 입술을 움직거렸다. 입술에 번지르르 물기가 흐르도록 해봤다. 그대로 되었다.
그녀는 거울에 얹힌 빗을 집었다. 머리를 쭉쭉 빗어내리면서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감탄하였다. 암갈색의 빛나는 머리카락. 그녀의 매력은 머리카락에서 속속들이 내비쳤다.
체칠리아는 자기가 좀 더 잘 생겼으면 하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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